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서영은. 언제부턴가 잊고 지냈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다. 그녀의 몇 몇 작품 제목이 그걸 증명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틀림없었다. 결혼 전 출간된 지 오래된 예전 작품집을 하나씩 모았는데 분명 그때, 83년의 수상작품집 <먼 그대>도 구입했었다. 굴곡진 삶 앞에 힘겹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는 듯하던 주인공들도 떠올랐다. 주인공 이름이 뭐였더라? 외로움과 고독이 뚝뚝 묻어나던 작품이었는데...작품 제목과 주인공을 연결시켜보려고 곰곰 생각해도 지금처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으니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집 안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책 무더기를 일일이 헤집을 수도 없고...




도대체 얼마만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후 내 앞에 선 저자의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한동안 그 앞에서 서성댔다. 그동안 저자는 어찌 지냈을까. 세월의 흐름이 그녀의 글에도 변화를 가져왔을까. 얼마나 달라졌을까.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라는 부제의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저자는 문학이 지닌 의미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고심한다. 올 것이 왔다,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라고 여긴 저자는 지금 자신을 옥죄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 몸도 영혼도 자유로와지길 염원했다. 그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산티아고에 함께 가자는 지인의 제안에 저자는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줄을 잠시 끊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삭발에 가까울 정도로 머리를 손질하고 유언장까지 쓴 저자는 배낭 하나를 등에 매고 길을 나선다. 2부에서 저자는 자신이 산티아고로 향하는 이유가 무언지, 왜 이 길을 가려했는지 낯설고 고된 길에 들어선 이의 고통과 아픔을 전한다. 하지만 3부에서 저자는 좀 더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는 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돌아보면서 안으로 다듬어간다. 물론 산티아고가 여느 유명 여행지처럼 소란스러움에 들뜬 모습을 보고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처음엔 궁금했다. 무얼 타나내는 건지, 아니면 노년에 접어든 저자가 삶의 변화, 혹은 갈림길에 들어선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아닐까 했는데 노란 화살표는 말 그대로 ‘노란 화살표’. 스페인의 이룬에서 출발해 산세바스티안...산탄테르...오비에도를 거쳐 피니스테라에 이르는 순례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뭔가 깊고 거창한 의미가 숨어있지 않을까 했는데 단순히 순례자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표시를 해주는 표시에 불과했다니 처음엔 다소 의아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나마 저자의 여정을, 순례길을 함께 하다 보니 ‘노란 화살표’는 그저 화살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표지판처럼 정해진 소재와 규격으로 모두의 눈에 띄기 쉽도록 배려된 것이 아니었다. 노란화살표를 쉽게 찾을 때도 있었지만 때론 보물찾기를 하듯 돌이나 나무, 기둥이나 담벼락에 숨어있는 이정표를 찾아야했고 아차하다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당황하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것도 고행의 하나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런 과정 역시 자신의 삶에 예정되어 있었을 거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자와 다른 종교이기에 책 곳곳에 종교와 관련된 대목이 쉽게 와닿지 않았고 낯설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에, 현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힘든 길을 가야겠다는 저자의 삶의 방식은 내게 많은 걸 돌아보게 했다. 지금의 나 자신에 만족하는지, 앞으로는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물음을 던지는 듯했다. 안타깝게도 난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나만의 노란화살표를 찾아야할까. 어디 있을까. 나의 노란 화살표는...

  




영혼의 부름을 따라 걷는 모든 이는 순례자다. 일상 속에서 자기만의 노란 화살표를 찾아 걷고 있는 세상 모든 성스러운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401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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