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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다큐 여행 - 국어교사 한상우의
한상우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 큰아이만 할 때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두 개의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 처음엔 중심 잡기가 힘들어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다 넘어져서 무릎이나 팔꿈치가 깨지고 다치기도 한다는데, 전 정말 쉽게,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배웠습니다. 두 다리를 열심히 놀리는 만큼 앞으로 달려가는 자전거를 타면서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이마와 두 뺨과 귀, 온 몸을 스쳐가는 바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스무 살을 고비로 서서히 자전거와 멀어졌답니다. 마당의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붉은 녹이 내려앉은 자전거를 보면서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큰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걸 가르쳐주면서 갑자기 자전거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냥 우두커니 앉지 말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여봐...페달을 마구잡이로 돌리지 말고 리듬을 타야지...커브를 돌 때는 도는 방향으로 몸을 살짝 기울여봐...아니, 그럼 안돼!...서둘지 말고...결국 큰아이는 자전거 타는 법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큰아이와 함께 하는 자전거 여행을 꿈꿨는데...아이의 자전거는 옛날의 제 자전거처럼 베란다에 우두커니 서 있답니다.
<자전거 다큐 여행>을 보게 된 건 이루지 못한, 어쩌면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할지도 모르는 저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시작으로 조금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그건 분명 자동차나 기차로 하는 여행과 다를 겁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좁고 깊숙한 길을 묵묵히 페달을 밟아 이르는 길...거기엔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과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알고 싶었습니다.
‘전선이 끊기자 전신주는 금세 늙었다’로 시작되는 대목을 보자마자 가슴 한 구석에서 쿵!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도시화로 인해 달동네의 판자촌이 밀려나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그곳이 바로 내가 사는 도시, 부산의 용호동. 그것도 나병환자들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니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유일하게 찾아간 모델하우스가 바로 그 곳에 지어질 아파트였다는 걸 알고 나니 왠지 부끄러웠습니다. 혼자 사셔서 빨래도 적었던 할머니, 그 분의 뒷모습에서 홀로 지내는 친정엄마가 떠올라 한없이 죄송했습니다.
<자전거 다큐 여행>은 중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가 자전거로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느꼈던 감상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부산 용호동을 비롯해 저자는 강화도의 전등사,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상원사, 기장의 대변항, 경주 안강의 옥산서원, 구례의 화엄사, 영주의 부석사, 청도의 운문사, 담양 소쇄원, 양산 통도사, 순천의 송광사 등지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데요. 경북 안동의 권정생님의 생가를 담은 사진이 또 한 번 제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답니다. 평생 아이들만을 위해, 아이들에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애쓰시다 무너진 몸을 결국 일으켜 세우지 못하신 권정생님을 저자의 글 속에 만날 수 있을 줄이야...미처 생각지 못한 만남이었지만 그만큼 더욱 의미가 깊었답니다.
한 권의 책에 담을 만큼의 사진과 글을 모으기까지 저자는 얼마나 달렸을까 생각해봅니다. 부지런히 다리를 놀려야 움직이는 자전거로 하는 여행은 분명 고단하고 힘겨웠을 겁니다. 이마와 등으로는 땀이 흐르고 다리는 비명을 질러댔겠지요. 하지만 저자의 글 속에선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만난 풍경이기에 그에겐 더욱 아름답게,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왔나 봅니다. 저자의 글 속엔 감사의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문득 저도 떠나고 싶어집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 땅을, 이 산하를 오롯이 느껴보고 싶습니다. 언제쯤이면 떠날 수 있을까요. 그때 땅은, 길은 제게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까요...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