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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974년 겨울, 테헤란의 루즈베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가의 읊조림을 들으며 의식에서 깨어난 ‘나’는 자신이 낯선 곳에 있다는 사실에 놀람과 동시에 갑작스런 감정에 휘말린다. 그러나 곧 자신을 저지하는 손길에 의해 의식을 잃고 만다.
첫출발부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할 찰라, 책은 1년 전인 1973년 여름의 테헤란으로 이야기의 무대는 옮겨진다. 주인공인 파샤는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지붕 위에서 단짝친구인 아메드와 함께 잠을 청하곤 한다. 동네에서 가장 높인 지붕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열일곱 살 파샤는 생각에 잠긴다. 얼마 후 고등학교를 마치면 아버지는 파샤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해 엔지니어가 되길 바라지만 그는 문학이나 영화를 전공하고 원한다. 현실보다 꿈과 이상,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듯이 파샤는 옆집의 소녀 ‘자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샤는 자신의 감정을 자리에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녀에겐 태어나면서부터 짝 지워진 사람, 테헤란 대학에 다니는 ‘닥터’가 있었는데 바로 그 ‘닥터’가 파샤에게 있어 멘토이자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파샤에 비해 그의 친구 아메드는 솔직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파히메가 약혼을 했다고 해도 과감하게 사랑한다며 고백한다.
이것만 보자면 책은 파샤와 그의 친구 아메드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1970년대 이란, 독재정권이 사바크란 비밀경찰을 앞세워 공포로 민중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던 시기가 소설의 배경이 되면서 이야기는 혼란에 빠진다. 명석하고도 저항정신이 강했던 닥터가 농촌 활동을 위해 잠시 떠난 사이 파샤와 아메드, 파히메는 자리를 만나러 가는데 함께 지내는 동안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더욱 깊어져 간다. 그러나 한여름밤의 꿈은 깨어지기 마련이듯 그들의 달콤하고 행복한 날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닥터가 비밀경찰인 사바크에 잡혀가는데 파샤는 그것이 자신의 실수 때문이라며 여기고 괴로워하는데....
1974년의 겨울, 현재의 시점과 1973년의 여름, 과거가 교차하듯 이어지는 이야기는 처음엔 다소 혼란스러웠다. 정신병원에 갇혀 잃어버린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인물과 한여름의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 꿈 많은 소년이 동일인물이란 것이 왠지 믿기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러다 이야기가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정신병원에 갇힌 인물이 파샤이며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이란 소설, 그것도 성장소설로 만났다는 점이 좋았다. 1970년대 초반의 이란, 테헤란을 배경으로 독재정권에 의한 억압과 탄압,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