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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ㅣ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지난 연말 신문을 보다 끔찍한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지방에서 벌어진 부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바로 큰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인 건 살해동기가 그저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살해했는데 자신의 범행이 밝혀질 게 두려워 어머니의 목숨까지 빼앗았다는 것. 순간 신문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자식들의 손에 부모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니. 갑자기 세상살이가 두려워진다.
<로마인의 피>가 담고 있는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바로 존속살인.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아들의 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버이를 살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단히 큰 죄로 여긴다. 특히 고대 로마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성격을 지닌 나라여서 더욱 심각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이의 온 몸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가혹하게 매질을 가한 다음 알몸으로 자루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때 개와 수탉, 뱀, 원숭이와 같은 동물을 함께 자루에 넣는다. 끔찍한 죄를 범한 아들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곁에서 동물들이 고문을 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실로 잔혹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여기 한 명의 농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 그의 아버지가 어느날 거리에서 괴한들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자 범인으로 아들이 지목된다. 평소 부자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 동기였다. 아버지가 살해될 장소는 아들이 지내는 아메리아 지방과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누군가에 의해 청부살인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다.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아들은 존속살해범이 되어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때 그런 아들을 변호하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아들 로스키우스를 재판이 열릴 때까지 보호하고 있는 카이킬리아의 외뢰로 사건변호를 맡은 키케로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요즘으로 치면 사립탐정이나 개인 변호사에 소속된 사건조사원)에게 사건의 전반에 관한 조사를 의뢰한다. 유명한 변호사들이 이 사건에서 손을 떼고 사건에 관계되는 걸 거부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누군가에겐 군침 도는 먹잇감. 고르디아누스는 자신의 더듬이를 바짝 긴장시키고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나서는데....
로마의 역사에 대해 무지해선지 당시 로마의 지배자이자 독재관인 술라나 사건의 변호를 맡은 키케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했다. 특히 더듬이 고르디아누스의 활약상은 정말 눈부시다. 소설의 초반 키케로가 보낸 노예의 행동과 말투를 보고서 주인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는지 추리해내는 과정을 보면서 ‘셜록 홈즈의 로마버전’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대 로마의 모습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실감나게 묘사한 ‘지적 역사추리소설’ <로마인의 피>. 알고보니 이 책은 저자인 스티븐 세일러가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 키케로의 법정변론문을 근거로 아들의 아버지 존속살해라는 이야기를 탄생시켰으며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의 1편에 해당한다고 한다. 1991년 <로마인의 피>를 시작으로 <카이사르의 개선식>까지 자그마치 18년간 10편의 이야기가 출간되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다음편은 어떤 이야기일까? ‘로마 서브 로사’ 2편 <네메시스의 팔>의 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