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에세이
함민복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에세이를 잘 안 읽게 됐다. 어쩌다 간혹 유명 작가의 이름으로 출간되는 에세이집을 보지만 기대보다 못 미칠 때가 많은데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육아에 시달리다보니 일상의 에피소드나 잔잔한 감동보다 책에 푹 빠져 몰입할 수 있는 소설에 손이 갔다. 하지만 계절이 가을의 끝무렵이어설까. 문득 일상의 감동이 그리워졌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은 부쩍 자라고 그 모습을 보며 감사하고 기뻐한다. 그런 것처럼 나의 평범한 일상 속에도 미처 느끼지 못할 뿐이지 감동은 분명 있을거라 여겼다. 메마르고 건조한 내 마음밭을 적셔줄 뭔가를 찾고 있을때 이 책을 만났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솔직히 강화도 시인으로 알려진 함민복을 난 알지 못했다. 저자에 대한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책장을 두어 장 넘기면서 곧 잊어버렸다. 함민복. 이 책을 통해 그를 처음 만났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다. 그는 미혼이면서도 후배의 부탁으로 주례를 설 때 넥타이를 맬 줄 몰라 쩔쩔 맸고 산골의 작은 마을에 이웃해 지내던 동네 형이 이사하게 되자 함께 걱정해주기도 하고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허풍 같은 농담을 섞어가며 추억에 젖어들기도 했으며 마당에 핀 봉선화를 바라보며 어릴적 누이와 함께 손톱에 봉선화물을 들이던 때를 떠올리기도 한다.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도 내보이는 맑고 담백한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시인이 아니라 시골의 순박한 아저씨를 만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때로 저자의 글에선 눈물어린 짠맛이 느껴졌다. 서랍 속의 반지를 보거나 두릅을 딸 때 효심이 지극한 저자의 마음은 언제나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가족들의 “내가 누구여?”란 물음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을 어머니와 보내게 됐으니 행복하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어머니에게 “엄마”라고 처음 불렀던 때가 언제였냐고 물어보는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언젠가, 어머니 등에 업혀 큰 물가를 지나는데 비가 내렸던 그 물가가 어디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갓난아기였던 네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큰 누이 데리러 제천 의림지를 지나는 거였다고 말해주었죠. 그때 어머니한테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볼 걸 그랬어요. 참, 나도. 물어보지 못해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것들이나 생각하고 참, 한심하지요. -102.




지나간 추억과 그리움, 소박한 아름다움, 따스함으로 가득한 그의 글을 읽으면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한가로운 시간, 방금 끓인 따끈한 보리차를 마시는 사소한 일상도 분명 행복으로 이어져있을 거라고. 책장을 덮는데 가슴 한 켠에서부터 찌르르 물기가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이 책은 무뎌진 내 가슴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감동의 비타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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