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덮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했다. ‘조병국’ 이름 석자를 다 치기도 전에 이름이 완성된다. 역시 유명한 분이시구나. 난 왜 여태 이런 분을 몰랐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검색한 ‘조병국’ 중에서 제일 먼저 부각된 인물은 프로축구 선수 조병국이었고 내가 찾던 조병국님은 그 다음에 단 넉 줄의 경력과 직함뿐. ‘홀트아동복지회 홀트부속의원 원장, 1958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서울특별시 시립어린이병원 근무, 홀트아동복지회 홀트부속의원 근무.’ 이게 전부일까. 다시 여기저기 뒤져보고 나서야 한 블로그에서 조병국님을 뵐 수 있었다.




‘50년간 입양아들을 돌봐온’, ‘입양아의 대모’, ‘몸이 부서질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하셨던 분. 정년퇴임을 하시고도 15년간이나 더 아이들 곁을 지키시다 극심한 어깨통증으로 의사가운을 벗으셨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국제 거지’라는 그 분의 별명이었다. 아이들의 수술과 치료에 필요한 의료 기부를 전 세계 각국에서 받아내시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분의 생애와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에는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이었던 조병국님이 입양아들을 돌보며 살아온 지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예쁜 외모로 병원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영희가 어느 날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곶감 달인 물을 먹고 살아났다는 것을 비롯해서 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져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현군이, 뇌성마비였지만 해외입양 되어 갔다가 의사가 되어 돌아온 영수와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지만 입양해간 부모에 의해 보조기구를 착용하고서 밝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들...그야말로 기적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먹고 살기도 힘들 만큼 가난해서, 혹은 장애를 안고 태어나서 친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 저자와 위탁모의 손을 거쳐 해외로 입양되어 간 아이들을 양부모는 사랑과 정성으로 길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입양아들은 다시 저자를 찾아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또다른 사랑으로 이어나가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물보다 진한 게 ‘피’라고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선 ‘피’보다 진한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닥친 시련과 위험한 고비를 넘겼음에도 소중한 생명을 끝내 이어나가지 못하는 아이들,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것만으로도 슬픈데 짧디 짧은 생을 접는 최후의 순간에도 제대로 챙겨주지는 못할망정 처치곤란한 짐짝과 다를바없이 대접받은 아이들의 모습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을만큼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그들의 가녀린 생명을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건 최신의 의학설비나 장비로 무장한 의료진이 아닌 자신을 따스하게 감싸줄 ‘온기’가 아니었을까.




한때 ‘아동수출국 1위’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저자는 버림받은 아이들의 가슴을 데워주고 사랑을 전해줄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결코 놓지 않았다. 자신이 쥐고 있는 가느다란 줄이 곧 그 아이들의 생명과 미래로 이어져있음을 알기에. 50년. 그 긴 세월동안 입양아들과 함께 울고 웃던 저자는 이제야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매순간이 곧 기적이던 저자의 삶을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다. 나에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언제나 감사의 마음을 지녀야한다는 걸 깨닫게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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