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코맥 매카시의 작품은 <핏빛 자오선>을 통해 처음 만났다. 인간의 잔인함과 광기가 불러온 끊임없는 살육으로 황무지가 피로 물들던 책을 읽고 마음이 극도로 불편했다. 스멀스멀 번지는 붉은 피에 나도 잠겨버릴 것 같아 한동안은 그의 책을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또다시 코맥 매카시의 작품을 덥석 집을 줄이야....




<국경을 넘어>는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작년 여름 국내에 출간된 <모두 다 예쁜 말들>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다. 첫 번째 작품을 읽지 않고 두 번째 작품을 읽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전작인 <모두 다 예쁜 말들>과 주인공이 다르다. 따라서 전작을 읽지 않고 바로 두 번째 이야기를 읽어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풍요롭고 거친 땅. 울타리도 없는 국경선을 지나 멕시코로 갈 수 있는 곳 히달고 카운티의 어느 겨울밤. 늑대 소리에 소년이 잠을 깨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을의 목장에서 기르는 소가 늑대에게 연이어 당하자 빌리와 아버지는 늑대를 잡기 위해 덫을 놓는다. 늑대의 가죽을 팔아서 돈을 벌던 시기여서 미국의 늑대는 이미 멸종된 상태. 멕시코에서 넘어온 것이 분명한 그 늑대는 빌리와 아버지가 설치한 덫을 교묘히 파헤쳐놓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날 빌리는 덫에 걸린 늑대를 발견하지만 새끼를 밴 늑대가 다리까지 다친 걸 보자 살려줘야겠다고 마음먹고 멕시코로 돌려보내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늑대를 풀어주기 위해 도착한 멕시코에서 늑대는 오히려 천막에 갇혀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투견장에 보내져서 개를 상대로 싸움을 하게 된다. 친구들이 있는 산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늑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년은 국경을 넘었지만 결국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는 걸 깨달은 소년은 늑대의 피투성이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늑대를 뱃속의 새끼들과 함께 돌무더기 땅에 묻고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곧 끔찍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소년의 가족들이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아 부모님이 죽고 달아난 동생 보이드만 간신히 살았다는 거였다. 소년은 인디언들이 훔쳐간 말을 찾기 위해 동생 보이드와 함께 멕시코 국경을 향해 길을 나선다. 그 길이 자신을 잔인하고 냉혹한 절망속으로 몰아넣게 될 줄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역시나. 코맥 매카시의 글은 만만하지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처럼 따옴표가 없는 글을 읽으며 이게 대화인지 혼잣말인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해야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스페인어도 책의 몰입하는 속도를 더디게 했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툼한 책을 여느 때보다 천천히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국경’이 가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거였다. 단순히 나라와 나라를 구분 짓는 경계가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그 이면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초반 늑대에 매료되어 마음을 나누던 순수한 소년이 마지막에 가서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개에게 파이프를 휘두르며 꺼지라고 소리친다. 무엇이 소년을 그토록 변하게 만든 걸까. 소년이 앞으로 걸어갈 삶의 여정은 어떤 길일까.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리지만 그럼에도 그 다음이 궁금해지는 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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