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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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뭐 어때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일간지에서  계속해서 비슷한 소식을 보도하니 왠지 궁금해졌다. 꿀벌이 어떤 연유로 사라지고 있는지 꿀벌이 사라짐으로 해서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전 세계의 꿀벌 집단이 5,60년대에 비해 현재는 절반가량 줄어들었고 지역에 따라선 80% 가까이 줄어든 곳도 있다고 하는데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온도변화가 꿀벌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으며 농약의 대량살포나 전자파 등이 꿀벌의 감소를 불러온 주된 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꿀벌이 사라짐으로 해서 양봉업계는 물론이고 농업분야 전체, 더 나아가 생태계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꿀벌을 단순히 자연의 일부이자 생태계의 일부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알게 되니 꿀벌이 어떤 곤충인지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호기심 가득한 상태로 표지를 넘겨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또 한 번 놀랐다. ‘꿀벌이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전공공부랑 담을 쌓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생물학도였던지라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최재천 교수인데 허튼 소리를 늘어놓지는 않았을테고 그럼 이 모든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




‘꿀벌은 곤충이다’ 이렇게 서두를 던진 저자는 19세기에 이르러 척추동물의 지위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꿀벌 군락은 하나의 생물이다. 그것들은 척추동물이다. 일벌은 생명 유지와 소화를 담당하는 몸이고, 여왕벌은 여성의 생식기이며, 수벌은 남성의 생식기이다”(3쪽) 꿀벌 한 마리 한 마리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꿀벌 군락을 쪼갤 수 없는 전체이자 하나의 생명체, 동물로 인식하고 그걸 ‘초개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럴 듯하다. 저자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꿀벌 군락은 ‘척추동물’일 뿐 아니라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한다. 그 증거들을 이후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설명한다. 꿀벌의 탄생에 있어 유전자 분자의 복합적인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꿀벌의 낮은 번식률과 유충을 양육하기 위해 여왕벌이 로열젤리를 분비하는가하면 유충의 체온을 인간과 비슷한 35도로 유지하기 위한 난방벌의 노력, 벌집을 위협하는 침입자를 미이라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꿀벌의 학습능력이었는데 그동안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걸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꽃을 찾아낸 꿀벌이 동료에게 춤으로 꽃의 위치나 꿀의 정도를 알려주는 건 물론이고 좌우구별이나 같고 다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한번 찾아서 꿀이 없는 꽃에는 특별한 화학적인 표지까지 남긴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예전에 벌에 쏘인 적이 있어서 ‘벌’이 주변을 날아다니면 덜컥 겁부터 났다. 그런 좋지 않은 경험이 있어서 처음 이 책을 대할 땐 용기가 필요했다. 본문 속에서 만날 벌의 사진이 두려웠다. 하지만 책장이 조금씩 뒤로 넘어갈수록 꿀벌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정면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듯한 표지사진도 더 이상 두렵거나 징그럽지 않았다.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그로부터 4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꿀벌이 없으면 수분도 없고, 식물도 없고, 동물도 없고, 인간도 없다...” 325쪽.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이 말에서 언급된 4년이 지났는지, 아니면 진행 중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꿀벌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하나씩 알아나가는 것.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닐까. 모처럼 나간 야외에서 벌이 날아다닌다고 성가신 불청객으로 취급할 게 아니라 이 지구에서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함께 살아나갈 생태계의 동료다. 작지만 그 속엔 엄청난 정보로 가득한 생명체, 꿀벌. 그들의  놀랍고 경이로운 세계로 초대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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