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해마다 1월이면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읽어야지’하는 책들이 있다. 감동적이다, 독특하다, 새로운 시도라는 평을 받은 책들을 차곡차곡 챙겨두기만 하고 읽지 못하던 책들, 그 중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있다. 단순한 SF소설이 아닌 우주와 지구의 존재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유쾌하게 풀어낸 책이란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1200쪽을 훌쩍 넘기는 두툼한 책의 위용은 ‘웬만한 각오로 내게 접근하지 마!’하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했다. 그러다 최근 <은하수...>의 저자인 더글러스 애덤스의 신작이 출간소식을 들었다. 마치 <은하수...>를 축소해놓은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소개 자료를 보니 관심이 급증했다. 게다가 400쪽도 안된다. 바로 이거야! 무릎을 쳤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 ‘성스럽다’와 ‘탐정’이 결합된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책의 출발은 사뭇 인상적이다. ‘이번엔’ 목격자가 없을 거라더니 갑자기 천둥이 땅을 울리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지옥을 연상시키는 탑에서 빛이 나타난다. 이어 등장한 전자수도사는 사람들의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믿는 바람에 고장이 나서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 수잔 웨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지쳐서 나가버린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리처드 맥너프는 세인트체드 단과대학의 은사이자 왕립 연대기강좌 담당 리즈교수의 초대로 콜리지 기념 저녁만찬에 참석한다. 식탁위로 지루한 얘기가 오고가던 중 리즈교수는 소녀의 작은 단지로 마술을 보여주다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리즈교수의 숙소를 방문한 리처드는 화장실에 난데없이 나타난 말 한마리에 의혹을 가지지만 자신이 수잔과의 약속을 깜빡 잊었다는 걸 그제서야 떠올리게 된다.




웨이포워드 테크놀로지Ⅱ의 창립자이자 소유주, 리처드의 고용주이자 수잔의 오빠인 고든 웨이는 자동차를 타고 오두막으로 향하는 도중 갑자기 총을 맞아 죽는다. 죽기 전 운전을 하면서도 수잔의 자동응답기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남기던 고든은 자신의 상황을 수잔에게 전하고자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리고 리즈교수의 숙소에서 나온 리처드는 어두운 밤길을 운전하다 언뜻 고든의 유령을 보지만 그걸 자신이 할 일을 팽개쳤기 때문에 생긴 죄책감쯤으로 여기고 수잔의 집에 몰래 들어간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더크 젠틀리였다.




책이 두껍지 않다고 만만하게 본건지, 섣부른 판단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초반엔 생각만큼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녹아내린듯 아래로 축 처진 표지의 시계를 보고 짐작했어야 했는데,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크 젠틀리! 그의 등장을 계기로 왠지 산만하고 뒤죽박죽 엉켜있던 이야기가 흐름이 생기고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별난 행동을 일삼던 리즈 교수에겐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가 타임머신을 갖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더크 젠틀리가 알아챈다. 더구나 40억년 전 지구에 오려다가 실패한 외계생명체 ‘사락사란’들. 당시 그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사락사란 엔지니어는 유령이 되어 지구를 방황하던 중 리즈교수가 타임머신을 갖고 있는걸 알고 그걸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 사진의 과오를 돌이키려 하는데....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지만)초반의 부진을 만회하는 걸까. 책은 중반을 접어들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처음엔 다소 썰렁하게 와 닿던 저자의 유머에도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뭐가 필요할까 싶던 싯구절도 왜 필요했는지 실감하게 됐다.




더글러서 애덤스의 독특하고도 기발한 상상의 세계를 드디어 만났다. 처음엔 이 책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실> 다음엔 <은하수...>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더크 젠틀리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니 반갑기도 하고 슬며시 고민이 된다. 뭐부터 읽는담? 행복한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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