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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게임 1 ㅣ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사죄의 글을 쓰고픈 심정이다.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두고 읽지 못한 책이 얼마나 많은지...<바람의 그림자>란 책이 있다. 짙은 안개가 내린 거리를 아버지와 아들이 손을 잡고 걷고 있는 표지의 책. 책에 관한 신비하고도 미스터리한 매력이 강점이라는 지인들의 얘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만큼은 꼭 읽어야지 했는데, 그 책을 미처 읽기도 전에 새로운 작품이 출간됐다. 바로 <천사의 게임>. 자욱한 안개 때문일까. 표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전작인 <바람의 그림자>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어떨까?
배경은 20세기 초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작가는 자기가 만들어 낸 이야기의 대가로 처음으로 돈을 받거나 처음으로 칭찬을 듣는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한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인 다비다 마르틴. 글자라곤 자기 이름밖에 모르던 그의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로 아들이 책 읽는 것조차 싫어해서 폭력을 휘두른다. 마르틴은 그런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것, 책 속에 위대한 희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페드로 비달은 신문사의 사환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피와 폭력으로 난무한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장한 마르틴은 편집인 바실리오의 제안으로 신문에 짧은 글을 싣는다. 그걸 계기로 바실리오는 그에게 글을 발표할 기회를 주고 ‘바르셀로나의 미스터리’란 제목의 그의 글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안드레아스 코렐리라는 의문의 사람으로부터 ‘몽상’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어 ‘클로에'란 여인과 몽환적인 밤을 보내지만 며칠후 다시 찾은 ’몽상‘은 몇 년 전 화재가 나서 문을 닫았다는 알 수 없는 얘길 듣는다. 그러던 중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동료들로 인해 신문사에서 해고통보를 받은 마르틴은 비달을 통해 또 다른 출판사를 소개받는다.
불길한 기운이 서려있다는 ‘탑의 집’으로 이사한 마르틴은 이그나티우스 B. 삼손이라는 필명으로 본격적인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한다. ‘저주받은 사람들의 도시’시리즈를. 잠을 극도로 줄이고 건강을 헤쳐가며 글을 쓰던 그에게 어느 날 크리스티나가 찾아온다. 비달의 운전사 딸이면서 비서이기도 한 그녀는 마르틴에게 비달이 쓰고 있는 소설을 수정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동안 크리스티나를 마음에 품고 있던 그는 그녀와 함께 비달이 쓴 소설을 다시 써나간다. 그리고 의문의 사나이, 안드레아스 코렐리는 그에게 엄청난 거액을 제안하며 1년간 오직 자신만을 위한 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는데.....
1,2권 합해 800쪽이 넘는 책장은 어찌나 더디게 넘어가는지...이야기의 흐름을 놓쳐서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이 책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었던 건 탑의 집에 흐르는 기이하고 불길한 분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고 안드레아스 코렐리의 정체는 무엇이며 마르틴에게 접근한 이유는 무엇인지, ‘잊힌 책들의 묘지’에 숨겨진 비밀은 대체 어떤 것인지...알고 싶어서였는데 처음 다소 힘겹게 흐르던 이야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속도를 더해 빠르게 진행되고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의외의 인물에 의한 반전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안개. 책 읽는 내내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마르틴이 머무는 ‘탑의 집’처럼 음산하고 우울하고 불길한 기운이 내 주변을 감도는 것도 같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지만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안개는 한참을 지나고 걷히지 않을 것만 같다. 무엇이 환상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쉽사리 분간이 되질 않는다. 후기를 보니 이 책은 저자의 4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세 번째 이야기가 출간되기 전에 <천사의 게임>을 다시 만나볼 생각이다. 당연히 <바람의 그림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