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 조선 선비가 본 드넓은 아시아 샘깊은 오늘고전 10
방현희 지음, 김태헌 그림 / 알마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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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 한 척의 배가 아슬아슬 떠있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양을 자세히 보니 중앙의 돛을 두 팔로 잡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러진 돛을 보수하려는지 긴 나무를 이으려는 사람도 있다. 높은 파도를 이겨내려는 모습에 긴박감이 흐른다.




<표해록>.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이 궁금증은 해결이 됐다. 표류가 물길을 가다가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정처없이 흘러다니는 것처럼 ‘표해록’은 ‘바다에서 표류한 일에 관한 기록’이라고 되어 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표지 그림의 파도와 배에 탄 이들의 긴장감이.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어쩌다가 바다에서 표류하게 됐을까.




제주에서 경차관으로 있던 최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최부는 관청의 배보다 빠르고 튼튼한 배를 빌려 고향인 전라도 나주로 떠나려하자 사람들은 날씨가 고르지 못하다며 만류한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겠다는 최부의 결심은 나쁜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배를 띄우게 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바다가 어두워지면서 파도가 거세지는 게 아닌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길을 가자고 마음먹고 닻을 올리지만 닻줄은 끊어진데다 설상가상으로 배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채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며칠을 표류하던 최부 일행은 해적을 만나 돛이 부러지고 노를 잃는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가까스로 중국에 도착하지만 고난은 계속되었다. 자신은 조선국의 관리임을 밝혔음에도 왜구라는 오해를 받자 종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써서 증명해 보이고서야 위기를 넘긴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선 선비로서의 꼿꼿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최부를 인상깊게 본 중국 관리의 도움으로 대운하를 따라 북경으로 향하고 산해관과 요동, 의주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간신히 돌아온 최부에게 성종은 그동안의 일을 상세하게 쓰라는 명을 내리고 이에 최부는 1488년 1월 30일부터 같은해 6월 14일까지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그것이 바로 <표해록>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세계 3대 중국 견문록 가운데 하나’라는 띠지의 문구였다. 얼핏 눈으로 보기에도 얄팍한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세계적인 기행문학으로의 가치가 높’다고 하는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을 날짜와 날씨(바다의 색깔이 어떠한지), 당시 중국 여러 지방, 양자강 남쪽지방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이 크게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최부의 꼿꼿한 자세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은 언어와 풍습이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글을 읽는 선비임에도 다른 나라의 특이한 점을 눈여겨보던 점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건 특별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뭐 그리 중요할까 했는데 먼 미래엔 21세기를 살아가는 40대 주부의 기록도 역사의 한 단면이자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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