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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작년말이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조용조용하게 털어놓듯 건네는 얘기에 어느새 빠져들어선 울컥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옆에서 장난감 갖고 놀던 아이가 날 이상하게 보든 말든 휴지로 줄줄 흐르는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읽었는데.
얼마전 또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번엔 김정현의 <고향사진관>이었다. 예전에 그의 <아버지>를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읽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제목의 ‘고향’이란 단어에서 왠지 비릿하고 짭조름한 눈물 냄새가 물씬 난다고 내 초감각 레이더가 주의신호를 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 앞에서 붉은등이 켜지는 것도 모르고 그대로 돌진. 아차 하는 순간에 난 이미 대형사고를 내버렸다.
‘나, 달성 서문의 자손 용준....스물다섯 나이에 가장이 되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의 친구 서용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군 제대를 앞둔 용준은 기대에 부푼다. 이제 곧 가슴 절절한 사랑도 해보고 자신의 꿈을 위해 젊음과 청춘을 다 바칠 각오를 새로이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날아든 급보, ‘부친 위독, 급 귀향 요망’. 채 열자도 되지 않는 이 전보는 스물다섯 용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장남인 용준에게 주어진 건 자신을 의지하는 가족들을 위해 아버지의 자리,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거였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진관과 예식장업을 묵묵히 이어가지만 용준의 가슴엔 채 피우지 못한 꿈이 있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활활 타올라 재가 되지 못한 꿈은 때때로 용준을 괴롭혔다.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았지만 결코 편하지 않노라고, 자신은 월급이란 거 딱 한번만이라도 받아보고 싶다고, 그런 친구들이 너무나 부럽다고.
어느날 갑자기 쓰러진 후 17년 동안이나 미소도 웃음소리도 없이 가는 숨소리만 이어가던 아버지는 희수연을 치르고 나서 결국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용준은 그동안 아버지가 곁에 살아계시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큰 의지가 됐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가족들을 위해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려는 용준은 또다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어처구니가 없으면 눈물도 나지 않는 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밤새 친구의 영정 앞을 지킬 땐 눈물 한방을 나지 않더니 막상 영구차가 고향사진관 앞을 지날 때 그 간판을 보니 눈물이 솟구치더라고 털어놓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는 어머니, 할 수만 있다면 당신과 아들의 자리를 바꾸고 싶어하는 어머니가 바로 거기 고향사진관에 있었다고.
고장난 수도꼭지 모양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마음속으로 고향사진관을 더듬어봤다. 어디쯤일까. 소백산자락의 영주. 양지이발소와 숙다방, 중화반점을 지나면 닿게 되는 곳 <고향사진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까.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감내하며 고향을 지켜온 용준의 마음이 아직도 그 언저리에 맴도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