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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가슴 깊숙하게 울림이 남거나 깔깔 배꼽 잡도록 웃기거나 오싹오싹 소름이 돋을만큼 스릴 있거나 혹은 무딘 머리에서 오호라~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큼 지적수준을 높여주는 책. 이것이 내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을 갖춘 작품이라면 일단 도전한다. 읽어봐야 뭐가 독특한지 알 수 있으니까.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바로 ‘독특함’이란 요소에 끌린 책이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전작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이 전개방식이나 내용 모두 정말 독.특.하.다.는 평을 듣고 구입했지만 아직 읽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데뷔작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구나 소설에 저자와 같은 이름의 사람이 등장하다니. 그가 바로 저자 자신인걸까...그렇담 실제 경험담, 논픽션이란 얘기??
7월의 어느날 저자와 같은 이름의 조너선 샤프란 포어란 미국인 청년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한다. 2차 대전 중 자신의 할아버지를 나치에게서 구해준 여인을 찾기 위해서. 그는 통역겸 가이드 알렉산더 페르초프(알렉스)와 운전을 맡은 알렉스의 할아버지, 지독한 방귀를 뀌어대는 암캐와 함께 길을 떠난다. 트라킴 브로드로 향하는 차 안에서 조너선은 누렇게 바랜 사진을 한 장을 꺼내보인다. 사진 속의 소녀를 가리키며 그녀가 바로 자신이 찾는 여인, 오거스틴인데 유일한 생존자라고.
그런데 그들의 목적지인 트라킴 브로드를 찾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오래전에 잊혀진 마을이라 새 지도엔 나타나 있지도 않을뿐더러 길가다 간혹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개운치 않은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트라킴 브로드. 거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기억은 물론 지도에서조차 지워졌을까.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낼 수 없도록 깊숙한 곳에 숨겨둔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 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만 커져가던 어느날 그들은 드디어 트라킴 브로드를 기억하는 이를 만나게 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는데 2차 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인들은 나치 못지않게 유태인에게 가혹하게 대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이웃을 배반하는가하면 가장 친한 친구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유태인 학살에 앞장섰다. 그리고나서 자신들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아예 기억 속에서 몰아낸 것이었다.
역시 독특했다. 책을 손에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단번에 꿰뚫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트라킴 브로드를 향해가는 것처럼 여러 가지 것들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도 아리송해서 다시 뒷걸음쳐 되짚어 나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제서야 조금씩 소설의 구성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부분적으로 다른 글자체와 형식을 달리한 글들, 줄줄이 이어진 대화, 편집과정에서 잘못된 것처럼 아래로 축 처진 소제목 등 모두 저자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얼마전에 봤던 <더 리더>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나를 이해하기 위해 아우슈비츠를 찾아간 미하엘의 눈앞에 펼쳐진 수없이 많은 주인 잃은 신발들. 그 느낌을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흘렀다.
이 책도 그랬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 그가 말하고자 한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어떤 것을 진실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짙은 안개 속을 헤매다 간신히 뭔가를 잡았다. 그것이 나를 목적지로 이끌어줄지 더 깊은 안개 속으로 몰아넣을지 모르겠다.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시 되짚어나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