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여행 1 : 그리움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몰아내고 잠근지 4년째다. 봐서 하나도 득될거 없는 오락 프로그램에 잡다한 광고에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니 정말 잘됐다 싶다. 하지만 간혹, 정말 가끔 후회가 된다.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을 때 바보상자 텔레비전이 그리워진다. 브라운관으로 전해지는 느낌과 감동을 챙겨볼 수 없어서 아쉬워진다.

 

<영상포엠 - 내 마음의 여행>은 모방송국의 제작팀이 그동안 방송으로 보낸 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냥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마음을 따라 여행’하고 싶었던 게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의 출발이었다고 한다.

책은 내게 추억의 낯익은 풍경으로 시작했다. 설악산의 한계령 휴게소. 여고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후 잊고 있던 곳이었다. 그곳의 눈 덮인 풍광, 무채색이 되버린 한계령을 보고 있자니 눈구경 하기 힘든 동네에 사는 난 아!하고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노랫말에서 가져온듯한 본문의 글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이란 대목이 실감이 났다. 붉은색과 초록색의 지붕이 이국적으로 다가오던 곳, 제주 추자도에선 한평생 욕심없이 살아온 생김도 사는 모습도 닮은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졌고 늘 바라보던 해운대와 다른 빛깔을 품은 남해 거제의 아득한 삼월의 바다를 보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충동이 일었다. 또 서른한 살에 청상과부가 되면서부터 멈춰진 시간을 여든이 훌쩍 넘도록 홀로 살아오신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니 왠지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고였다. 안개가 자욱한 청송의 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밤마다 아이들을 잠자리에 누이고 이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목소리,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 읽어나가니 잠자기 싫다며 보채던 아이들은 어느새 곤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노래 하나가 귓가에 맴돌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향수’란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만큼 이 책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음악이 또 있을까. 물론 책의 뒷부분에 방송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곡들을 실어놓긴 했지만 텔레비전으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선 아는 음악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영상과 본문의 글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손에 초록이 묻어날 것 같은 책의 띠지를 한참 들여다본다. 초록이 무성한 나무와 한적한 오솔길, 이 길을 따라 무작정 걷고 싶어진다. 이 길의 끝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낯선 곳, 평범한 듯 특별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나를 이끌지 않을까. 언제든 그 곳에 다녀오리라. 그리고 나 이렇게 말하리.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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