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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ㅣ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기분 좋은 바람을 일으킨 범인은 바로 <마스터 앤드 커맨더>였다. 모두가 잠든 밤, 사방이 조용한 시각인데도 검푸른 깊은 바다, 망망대해를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나아가는 범선을 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어~이, 돛이 팽팽하도록 항로를 유지하란 말야!”
예전에 러셀 크로우란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봤는데 거기에 원작소설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다.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작품은 이 소설이 처음인데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니 영국에선 저명한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알려져 있었다.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을 무대로 탄생한 소설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미완성 유작을 포함해 모두 21권이다. 특히 저자의 치밀한 묘사와 화려하고 풍부한 어휘가 소설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책은 아름다운 총독 관저에서 열리는 음악회로 시작된다. 음악에 몰입한 잭 오브리가 박자를 맞추자 ‘박자 좀 제대로 맞추라’며 핀잔을 주는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앞으로 잭 오브리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또 한명의 주인공 스티븐 머투린이다. 자존심 강한 오브리에게 실로 불쾌한 일이었지만 그때의 첫만남은 서로에게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건장한 체격의 해군 대위인 잭은 뱃사람으로서는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지만 매번 승진할 기회를 놓치고 머투린 역시 당시 재정상태가 최악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신경이 예민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오브리가 함장 임명장을 받으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오브리는 이른 아침부터 선원들을 소집해야한다거나, 그전에 제일 먼저 감사인사를 먼저 드려야 한다며 들뜬 기분을 만끽한다. 어깨에 새 견장을 달고 거리에 나선 오브리는 머투린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서로가 악기를 연주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두 사람은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오브리의 행운이 오래가진 못했다. 그가 줄곧 데리고 있던 부하 선원들을 전임 함장이 모두 데려갔다는 것이다. 능력있는 부관과 선원들을 순식간에 빼앗긴데다 출항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골머리를 앓던 오브리는 우연히 머투린이 의사란 사실을 알고 그에게 자신의 배에 군의관이 되어 함께 바다로 나가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괴물처럼 이상하게 생긴 새나 물고기를 볼 수 있고 더불어 나포 상금도 벌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하루하루의 생활조차 버거웠던 머투린은 오브리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때마침 제임스 딜런이 부관으로 오면서 출항준비는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이어 바다에 들어선 소피호의 항해는 순풍에 몸을 실은 듯 순조로웠다. 또 나포를 거듭하는 사이 오브리를 비롯한 소피호 선원들은 바다 위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지만 곧 위기에 빠지는데...

책의 주인공인 오브리와 머투린, 그들의 성격은 정반대다. 오브리가 큰 덩치만큼이나 호탕하고 자신만만하지만 울컥하는 성급한 면을 지닌 반면 머투린은 내성적이고 소심하지만 차분한 성격이어서 오브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인데 서로 다른 면을 지니고 있는 오브리와 머투린은 서로 존중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또 초반엔 차마 뱃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던 소피호의 선원들이 차츰 뱃사람의 면모를 드러내고 오늘 잠잠하던 바다가 언제 표정을 바꾸어 이빨을 드러낼지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함장 오브리에게 존경과 절대적인 신뢰, 믿음을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총 21권이나 되는 해양장편 소설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21부작 미니시리즈의 초반 1,2부만 본 셈인데 무척 만족스럽다. 몇 가지 단점을 갖고 있지만 매력적인 주인공들과 바다 위란 낯선 배경, 적함과 대치하고 전투를 치르는 장면 등 소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다만 이 소설의 특성상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선원들 저마다의 역할이나 배의 구조, 항해에 관한 지식을 언급하는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읽는 속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그 부분을 넘어서면 곧 순풍이 분다. 헐리웃 영화를 연상시키는 박진감 넘치고 긴박감 있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오브리와 머투린을 비롯한 소피호 선원들의 내일은 어떠할지, 19세기 초 바다 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을 소피호가 앞으로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됐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외항선원이셨던 아버지는 1년에 한두달 휴가 받아 집에 오시면 멀미가 난다고 하셨다. 바다가 아닌 뭍에서 멀미가 난다니...어릴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아버지의 마음이, 심정이 이해가 됐다. 고작 두어달 되는 동안에도 파도로 넘실대는 바다를 잊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대형범선의 모형키트를 가져오셔서 집에 계신 동안 만드셨다.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몸체를 만든 다음 색을 칠하고 서로 어지럽게 늘어진 돛을 연결하고 나면 선원 각자의 역할에 맡는 위치에 사람을 배치하셨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대형범선 5척과 항공모함, 실제 아버지가 타셨던 선박 등 모두 7척의 배를 만드셨다. 지금 우리집엔 아버지가 제일 마지막으로 만드신 실제 선박의 축소한 배가 장식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손길이 머물렀을 모형 선박을 자꾸 바라보게 됐다. 켄터키 할아버지처럼 푸짐한 체격의 아버지가 콧등에 돋보기를 끼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작은 부품들을 조립하던 생전의 모습이 떠올라 콧등이 시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