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사 오디세이
쓰지 유미 지음, 이희재 옮김 / 끌레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보통 평범한 사람에 비해) 조금 많이, 꾸준히 읽는 편이지만 번역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번역된 책을 읽을 때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나 몇 번을 읽어도 그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거나 껄끄러운 대목이 나오면 ‘이게 내 한계야...’라며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아이의 그림책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리듬감없이 밋밋한 문장이나 단어나 용어의 선택에 의심가는 대목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눈으로 읽는 글과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글에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을 줄이야!) 그림책의 역사애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세계의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라는데 내 아이는 외면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린이독서지도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바로 '번역'의 문제였다. 그럴때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은 원문을 비교해서 확인해 본다지만 한글 외엔 어떤 나라의 외국어도 모르는 내겐 불가능했다. 번역자가 누구인지 확인해보고 책을 선택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번역사 오디세이> 이 책은 프랑스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번역가인 저자가 쓴 프랑스 번역사이다. 번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로 얘기를 시작한 이 책은 서유럽과 아랍권, 다시 프랑스를 아우르며 그 곳에서 어떤 분야의 책이 주로 번역되어지고 그 번역이 어디로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그리하여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우지 않아선지 사실 이 부분은 그리 쉽지 않았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 서유럽이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슬람을 정복했지만 그들은 이슬람의 문명, 아랍문화에 놀라게 된다. 자신들이 야만족이라 여겼던 이슬람이 따로 번역기관을 두고서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고스란히 받아 아랍어로 번역하고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모습을 봤으니!! 그에 자극을 받은 서유럽은 번역에 몰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르네상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번역의 힘이란, 실로 놀랍다.

 




번역의 질을 거론하면서 ‘벨 앵피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벨 앵피델은 글자 그대로 말하자면 ‘부실한 미녀’인데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프랑스가 라틴어보다 우월하고 아름답다는 우월감이 아름답지만 정확하지 않은 번역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 번역사마다 번역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있었다. 그 유명한 <율리시즈>를 번역한 발레리 라르보는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을 연애와 비슷하다고 했다. 자신이 번역하는 책은 바로 먼 나라의 공주님이어서 그 아름다운 공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아 남편의 지위를 얻고 얼마나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는지는 바로 번역자의 열의에 달려있다고 했는데 무척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의외의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작가 중에 번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가 <햄릿>과 <아이반호>를 번역했으며 프랑스문학의 대표작가인 앙드레 지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는데 20년이 넘는 시간을 오직 <햄릿>을 번역하는데 몰두했다고 한다.

 




2년전인가? 국내 모방송국의 아니운서가 번역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다. 얼마후에 그 책은 다시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아나운서 자신이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던 책에 엄연한 번역자가 따로 있었던 것, 즉 대리번역을 했다하여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었다. ‘번역도 엄연한 창작’인데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독자를 우롱했다며 반환소동까지 일었던 기억이 난다.

 




'번역은 창작이다.' 당시엔 그 말이 100% 진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번역사 오디세이>를 통해 번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또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번역은 창작이 아니다. 그렇다고 창작이 아니냐면 그것 역시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번역은 반역’도 아니다. 번역은 단순히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저자와 일대일로 만날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둘 사이에서 안내와 조언을 하고 더불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예술, 철학을 또 다른 언어로 옮겨 표현하고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의 전달은 바로 번역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기억하자.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또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저울에 올리는 것은 사전에 정의된 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다.... 그것은 살아서 고동치는 말이며 원문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다리를 뻗어 작품 전체와 긴밀히 얽혀 있다. 저울에는 그 생명의 무게가 얹힌다. 따라서 저울의 또 한편에도 ‘똑같은 생명의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등가의 무게’가 필요하다. -- 발레리 라르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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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8-06-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꼭 읽어보고 싶어요!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