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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1 (보급판 문고본) - 순간 이동
스티븐 굴드 지음, 이은정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한때 만화<드래곤볼>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지금 대학생인 조카들이 초등학생일 무렵, 조카들 옆에 끼어서 한두 권씩 보다가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세계에 흩어진 일곱 개의 드래곤볼을 모두 모으면 용이 나타나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간단한 줄거리. 하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 엄청난 상상력,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는 서른을 코앞에 둔 내 나이도 잊게 할 만큼 강력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주인공인 손오공이 야트랜드란 별에 불시착했을 때 그 곳 주민들에게서 배운 새로운 기술, ‘순간이동’이었다. 집게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정신을 집중하더니 순간 사라지는 기술.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 후 나는 출퇴근길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버스 안에 있거나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어딘가로 여행하고 싶을 때마다 손오공의 환상적 기술이자 능력이 내게 없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스티븐 굴드의 장편소설 <점퍼>는 순간이동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순간이동 능력은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다르다. 손오공이 어떤 사람을 생각한 다음 그의 기(氣)가 느껴지는 곳으로 순간이동 한다면 그들은 사람이 아닌 장소를 느껴야한다. 아니, 느끼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눈을 감고도 그 곳의 모습이나 풍경이 떠오를 정도로 훤~히 아는 곳이어야 한다. 손오공이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론 갈 수 없듯이 그들은 가보지 않은 장소론 이동할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카메라를 동원해 자신이 가는 장소를 녹화하면서 꾸준히 복습(?)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순간이동에도 뛰어난 기억력이 필요하다니...아이러니다. 그럼 어떠랴. 사람이든 장소든 뭐가 중요해. 그런 멋진 능력이 있다는 자체가 행운 아닐까.
1,2 두 권으로 이뤄진 <점퍼>는 각각 주인공이 다르다. 1권 <순간이동>편에서는 10대 후반, 성인의 기준이 되는 열여덟살의 데이비드에 관한 이야기다. 술에 취하면 가족을 폭행하는 아버지를 견디다 못한 데이비드의 어머니는 6년전에 갑자기 집을 나간다. 아내의 가출이후에도 반성은 커녕 전혀 달라지지 않은 아버지는 아들인 데이비드를 폭행한다. 그런 어느날 데이비드는 아버지가 휘두른 벨트를 피하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 그에게 가장 편안한 장소인 도서관으로의 점프, 이게 그의 첫 번째 점프였다.
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순간이동의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데이비드는 무작정 고향을 떠난다. 예전에 부모님과 함께 갔던 뉴욕에 자리잡은 데이비드는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아직은 미성년자인데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서류도 갖고 있지 않는 그를 아무도 채용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진 데이비드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은행금고를 턴다. 순식간에 백만 달러란 엄청난 거금을 손에 쥔 데이비드는 뮤지컬 공연장에서 우연히 밀리란 여대생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또 어렸을 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로부터 추격을 받는다. 게다가 어머니가 탄 항공기가 테러범에 의해 납치되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참혹한 죽음을 맞고 데이비드는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데...
2권의 주인공인 그리핀 역시 데이비드처럼 순간이동 능력자다. 다만 데이비드가 자신의 능력을 가족이나 밀리에게 털어놓지 못해 고민했다면 그리핀은 4살 때 여행객들 앞에서 처음 점프하면서부터 부모에게서 보호와 보살핌을 받는다. 아버지와 함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점프 연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연히 괴롭히는 친구를 피하려다 점프를 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그를 쫓는 ‘팔라딘’이란 조직의 사람들에게 부모가 살해된다. 부모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그리핀은 온통 모래와 바위뿐인 곳으로 점프하는데....
두 명의 십대의 소년, 순간이동 능력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그들은 더 이상 평범한 소년과 같을 수 없었다. 순간이동, 점프...누구나 부러워할 능력임에 분명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그들에게 점프는 고독과 시련의 출발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순간이동을 터득하면서 벌이는 여러 사건들,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는 모습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또 마음 여린 소년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은 언제봐도 뿌듯하다.
큰아이는 간혹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기어다니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말을 한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보는 초능력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흥미있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요즘 한창 상영중이다. 보러 가고 싶다. 이것만은 꼭 보고 싶다. 소설 속 장면이 영화 스크린에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나 궁금하다. 하지만 애들 재워놓고 나면 한밤중인데...어떻게 보러간담??? ㅠㅠ, 이럴때 또다시 그가 생각난다. 손오공....너의 능력을 내게 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