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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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셰익스피어는 없다> 제목이 정말 자극적이다. 누가 봐도 이 책의 주인공임이 분명한 ‘셰익스피어’보다 ‘없다’란 글자를 더 크고 눈에 띄게 써놓았다. 무슨 의도에서일까. 단순히 셰익스피어가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정확히 언젠지 모르겠다. ‘셰익스피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란 소문이  있었다. ‘셰익스피어’란 이름만 안다면 누구라도 귀가 솔깃해질 얘기였다. 셰익스피어가 가공인물이면 진짜는 누군데?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더라. 잉? 정말? 엘리자베스 여왕이랑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를 자세히 비교해보면 완전히 똑같다는데, 수염만 빼면....뭐시라고라고라? 하지만 추측만 난무할 뿐 이렇다할 증거도 없는 주장이 으레 그렇듯 그 소문도 한동안 주변을 맴돌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2007년 12월. 셰익스피어는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영국의 위대한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그를 엘리자베스 여왕은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는데...그런 셰익스피어가 정말 없는 것인가....




이 책의 저자 버지니아 펠로스는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없다”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발표된 수많은 작품을 쓴 사람은  따로 존재하며 그의 이름은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베이컨이 누구인가. 경험과 귀납적 실험에 의한 지식 습득을 중요시하고 인간의 편견을 4가지 우상으로 비유한 것을 고등학교 윤리수업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바로 그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니...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짜 원작자를 둘러싼 의혹과 논쟁은 18세기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희곡 중에서 배경이 엘리자베스 시대와 흡사한 작품이 많다고 여겨지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또 유난히 반복되는 구절이 많고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불필요하게 이탤릭체로 쓰거나 대문자가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들을 따로 모아 베이컨의 암호관련 책과 비교분석하고 해독해보니 믿기 어려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격파해서 영국을 일류 해양국으로 만들었으며 평생 결혼하지 않고 처녀로 늙어 죽어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명언을 남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그녀가 레스터 경과 몰래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가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처녀 여왕’이란 신비한 이미지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여왕은 아들의 출생을  비밀로 했고 베이컨은 그 여왕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 유럽의 군주 중 가장 강력한 왕실의 ‘왕자’임에도 그것을 인정받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출간한 책에 여러 종류의 암호로 메시지를 숨겨놓았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비롯한 살인과 음모, 고위 권력층의 부패와 비밀, 스캔들, 더 나아가 프랜시스 베이컨 자신의 삶을....




표지를 펼쳐 책장을 불과 두어장 넘기면서부터 끝까지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엘리자베스와 베이컨의 관계도 그렇지만 역사상 가장 완벽한 영어로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희곡을 썼다고 알려진 이의 교육 수준이 실제론 형편없다니...그렇다면 그를 일컬어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영국의 보배'라 했던 여왕의 말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처음 이 책을 읽을 땐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둘러싼 숱한 의혹을 밝혀내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는데 아니었다.




한마디로 이 책에서는 복잡한 암호에서 밝혀진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을 결합함으로써 지금까지 알려진 적 없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업적과 일생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책 속의 내용을 100% 사실이라 믿을 수도 없고 단순히 저자의 상상력과 추리가 빚어낸 소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왜냐면 너무나 유명한 세 명의 역사적 인물 엘리자베스, 베이컨, 셰익스피어가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들의 생활이나 생애가 서로 조금씩 겹쳐지는 게 당연하고 그게 지금과 같은 의혹을 불러온 건 아닐까. 다만 고전경험론을 창시했던 철학자인 베이컨이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식의 폭을 설명하기가 좀 더 쉬워지겠구나...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읽었던 책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떠안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셰익스피어’를 겁색했다. 그랬더니...자그마치 총 12,880건의 자료가 쭈루룩 펼쳐졌다.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인 셈이다.




혼란한 마음을 접듯 책을 덮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표지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작은 조각을 이어붙인 사진, 누군지 알 수 없는 인물...꽉 다문 입술에 살짝 비친 미소가 왠지 비밀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셰익스피어는 진짜 누구입니까.



친구여, 부디 여기 담긴 흙먼지를 파내지 마시게!

이 묘석 돌들을 그냥 두는 자는 복을 받고,

내 뼈를 움직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자신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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