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 ㅣ 창비 한국사상선 1
정도전 지음, 이익주 편저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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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됐다. ‘창비 한국사상선’인데 창비 60주년을 맞아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유와 철학을 담아내어, 한 권이 아니라 무려 30권을 내놓았다. 목록을 보니 조선 건국을 일궈낸 정도전을 시작으로 20세기 한국 정치에 큰 획을 그은 김대중 전대통령으로 끝나는데 세종, 정조, 서경덕, 이황, 이이, 박지원, 정약용, 안창호, 한용운, 함석헌 등 이름만으로도 어떤 인물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상가도 있지만 낯선 이름도 제법 보였다. 그들을 통해 오늘날의 K문화가 싹틀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새상을 약속하던 자본주의가 반문명적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다수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간 지 오래다. 이제는 인간 문명의 기본 터전인 지구 생태를 거세게 위협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결국 세상의 종말이 닥친다 해도 놀랄 수 없는 시대의 위태로움이 전에 없던 문명적 대전환을 요구한다는 각성에서 창비 한국사상선의 기획은 시작되었다. -5쪽

 


‘창비 한국사상선’의 첫 번째 <정도전>, 푸른 대나무가 새겨진 표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예로부터 대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름을 잃지 않고 어떤 외압이나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다해서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했는데 푸른 대나무의 기상이 정도전의 삶과 사상 그 자체를 나타내는 건 아닐까 싶다.

 


‘조선은 한국 역사에서 매우 드물게 전쟁을 거치지 않고 건국된 나라이다’로 시작된 책은 국사학자 이익주 교수의 서문 ‘책임정치의 씨앗을 뿌린 혁명적 정치사상가’에서 정도전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후 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도전의 핵심 사상을 알 수 있는 책 <조선경국전>,<경제문감>,<경제문감별집>을 각각의 장에 소개해놓았고 산문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조선 건국 2년 뒤에 이성계에게 올린 <조선경국전>은 원의 <경세대전서록>의 형식을 모방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조선의 뼈대를 세우는 법제적 성찰이 돋보이는데 당시 조선의 상황과 현실을 반영한 글을 썼는데 ‘왕위를 바르게 함’ ‘국호’ ‘세자를 정함’ ‘왕실 계보’ ‘교서’ ‘치전’ 등 왕실과 관련한 주제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인상적인 대목도 많았다.

 


임금은 하늘의 일을 대신해서 하늘이 내린 인민을 다스리는데,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관청을 설치하고 (...) 정치제도를 만든 이유가 여기 있다. -47쪽


 

무릇 임금은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 의존하니,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 -60쪽

 


임금은 어진 이와 더불어 하늘이 내린 직분을 함께하고, 하늘이 내린 백성을 함께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진 이를) 하늘이 내린 녹봉으로 후대하여 그로 하여금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자식을 기르는 데 근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직책을 수행하는 데만 전력하도록 해야 한다. -73쪽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접한 <조선경국전>에 비해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은 ‘한국사상선’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재상과 관리의 역할을 비롯해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인데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민본 위민 정치의 원칙을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고려 왕조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서 민본 위민 정치를 실현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29쪽)’했던 정도전의 철학과 사상을 한 권의 책으로 단박에 꿰뚫을수는 없다. 나주 유배라는 혹독한 겨울을 겪으면서도 민초들의 삶 속에서 개혁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다진 그의 모습은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대나무와 닮아 있다.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민본’의 가치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의 사상이 2026년 10월의 어느날,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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