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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그림들 -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
이원율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2월
평점 :
관자놀이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 그를 한 노인이 끌어안고 있다. 쓰러진 남자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서 힘에 부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남자가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 손은 허리춤을 받치고 다른 손은 지혈이라도 하듯 남자의 관자놀이를 꼭 누르고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노인의 눈빛이었다.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채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한 모습. 어쩐지 절박함에몸을 떨고 있을거란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피 흘리는 남자의 차림새와 바닥의 카펫. 평범하지 않은 수준을 벗어나 고급진 느낌. 어쩐지 예사롭지 않다. 남자와 노인, 이들은 누구일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위험한 그림들>은 표지가,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이란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장면은 무엇일까. 저자는 어떤 이유로 그것이 위험하다고 했을까.
저는 역사를 ‘읽고 외우는’ 방식 아닌 ‘목격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과거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절감했습니다. -6쪽
본문에서 저자는 스무 개의 장면을 소개해놓았다. 시작으로 고대, 중세, 근대이행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에서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으로 꼽히는 스무 개의 그림. 그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그림도 있지만 처음 접한 그림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개된 그림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의미이지 전후상황까지 ‘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소개된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알게 됐지만 대부분의 그림이 눈에는 익었으나 어린 아이의 매서운 눈썰미의 활약에 대해선 <위험한 그림들>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런가하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예전에 독서모임을 통해 소크라테스 대화편을 읽으면서 접했던 내용이었지만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그림부터 첫만남이었다. 책을 좋아하던 소녀가 욕심 많은 부모의 욕망 때문에 왕위에 올랐지만 메리 1세에게 왕위를 넘겨주며 ‘9일의 여왕’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 비정한 정치의 희생양이 되버린 제인을 메리는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개종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하지만 제인은 변절자가 될 수 없다며 거부하고 처형대로 향했다고 전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경을 넘어 국외로 도주하려다 붙잡힌 왕실가족의 사연이 담긴 [루이16세와 국왕 가족의 체포]도 인상적이었다. 어린시절 만화를 통해 만났던 루이16세나 마리 앙투아네트, 그들이 결국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는 장면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체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최고 권력을 누리다가 하루 아침에 단두대에 오르는 처지가 된 이들의 절망적인 감정, 그 처절함을 캔버스에 담아낸 화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림을 이야기하는 책, 그림의 당시 배경이나 역사. 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지금까지 여러 권 읽었다. 하지만 <위험한 그림들>은 이전의 독서와 다르다. 독자가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림을 읽을 수 있도록 세밀하게 안내한다. 단 하나의 장면에 숨겨진 이야기. 더 나아가 역사에 관심있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표지그림에 담긴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