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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 - 리추얼이 만드는 일상의 회복력
펄 카츠 지음, 정영은 옮김 / 북다 / 2025년 12월
평점 :
새해가 되었다. 벽에 새 달력을 달았다. 다이어리도 새것으로 바꾸었다. 모든 것이 새것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차치하고 사회적인 나이를 분명 한 살 더 먹었으니 분명 과거에 비해 달라진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최근에 읽은 책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는 가장 먼저 제목에 끌렸다. 특별한 성과나 이벤트가 없는 ‘보통의 날’들이 모여 ‘단단한 삶’을 이룬다니 대체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저자인 펄 카츠는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정신의학 및 행동과학과 교수다. ‘문화와 민족성이 정신질환과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는데 언뜻 와닿지 않았다. 나처럼 낯설어하는 독자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서두에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스타벅스 음료의 조합은 무려 8만 7천개에 달하지만 음료를 주문하고 수령하는 몇 가지 방식만 익숙해지면 얼마든지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처음 스타벅스를 찾았을 땐 낯설어 당황했지만 이내 적응하고 편안해졌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겪는 규칙이나 루틴, 의례 같은 틀이 심리적인 자유를 준다고 한다. 이걸 저자는 ‘리추얼(Ritual)’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루틴의 일부로 평범한 리추얼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를 닦고, (...) 리추얼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리추얼이 지닌 예측 가능성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생각하고 상상하고 성찰할 자유를 준다.-16~17쪽.
리추얼이 우리에게 자유와 견디는 힘을 준다는 걸 전하기 위해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반복해서 수행하는 리추얼이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 네 부분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가장 먼저 장소나 종교, 역할에 있어서 규칙이나 관습, 의례 같은 것들이 처음엔 갑갑하게 옥죄는 듯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심리적인 자유와 함께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걸 ‘1부 틀이 있어야 더 자유롭다’에서 풀어놓았다. ‘2부 생로병사를 감당하는 힘’에서 죽음을 말하면서 ‘애도의 자유’를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9년 전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애도하고 마음으로 작별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던가를 생각해보면 애도의 날들은 곧 내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들 사이에서 기존의 관계를 되찾으려 애쓰지만, 결국에는 사별 후의 삶이 예전의 삶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로써 자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실을 견뎌낸 것이다. - 170쪽.
삶을 지탱해 주는 작고 반복적인 습관, 하루를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질서,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나의 삶이 공허해지지 않고 불안과 혼란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되찾게 하는 것. 작고 소소하지만 그것들이 쌓였을 때 단단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리추얼’. 내겐 어떤 리추얼이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