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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의 초대 - 뜻밖의 생각
민이언 지음 / 미드나잇인 / 2025년 12월
평점 :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학창시절 난 국민윤리 과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수업시간엔 분명 설명을 이해한 것 같았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린다고 해야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상가의 철학을 어떤 게 맞는 건지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전에 동행자와 갔던 길을 혼자 찾으려고 할 때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난감했던 것처럼. 국민윤리 점수가 평균을 깎아먹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그게 마치 내가 윤리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걸 드러내는 것 같아서.
10여 년 전 우연히 참석한 인문서적토론모임을 통해 철학을 다시 접했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가 대부분이어서 난해한 철학적 개념과 해석을 두고 열띠게 토론을 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깨달은 것은 어쩌면 철학엔 정답이 없는 게 아닐까. 나의 생각, 나의 철학을 다듬어가는 것이 철학에 있어 정말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철학으로의 초대>가 그래서 반가웠다. ‘철학으로의 초대’란 제목에서 “철학,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아요. 우리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풀어봐요”라며 저자가 반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 민이언은 한문학과 중국어 전공자다. 그런 그가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니체를 만나면서 10여년 간 서양철학을 순례하듯 둘러보고 연구했다고 한다.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사상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모두 섭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그는 자신을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는 매순간 자신에게 떠오른 것, 마음의 울림이나 생각들을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에는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의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고민의 흔적들이 다섯 개의 챕터에 꾹꾹 눌러담겨 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나 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저자가 어떻게 생각을 이어나갔는지 지켜볼 수 있다. 이를테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 간다>에서 연이어 일어난 우연으로 인해 극적인 스토리를 자아내는데 그 대목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우연성이 모여 자아낸 입체감이 아닌, 우연성의 일부를 잘라낸 단면만으로 우리의 삶을 정의할 수는 없다.(53쪽)’ 살면서 숱하게 접하는 부조리한 사건 속에서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지 의문을 갖곤 하는데 저자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한 것 같다. 자신이 생각한 정의가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가지면서 ‘올바름’을 언급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정의라고 일컬어지는 법마저도 우리의 편이 아닐 때가 있다.(...) 시민 개개인의 각성 그리고 현기증, 그로 인해 쏟아져 나오는 토사물을 뒤집어쓰지 않는 한, 부조리한 체계는 변하지 않는다.(90~91쪽)’
철학이란 대체 뭘까. 챗CPT는 이렇게 답했다. [철학은 세계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들, 즉 '무엇이 실재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들을 이성과 논리를 통해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며, '지혜에 대한 사랑(Phil-Sophia)'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전제를 비판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며,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되는 보편적 이해를 추구하는 활동입니다.]
한마디로 철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인간의 삶에서 떠오르는 근원적인 의문과 질문들을 깊이 탐구하는 것. 즉 어떤 질문이든 그에 대한 답은 하나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의문을 풀려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긴 하지만 헛걸음은 아니었다. 깊은 숙고를 거친 끝에 마주하게 되는 것. 내 생각과 사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궤적만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로 내가 가야할 길은 영원히 찾아지지 않는다. 정해진 하나의 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당신의 길이 생겨난다. 길은 너의 앞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의 뒤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57쪽.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피할 수 있었으면 진즉에 피했어야 할 절망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고 즐길 수 없기에 절망한 것이다. (...) 니체 역시 고통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야야 도리어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역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6~207쪽.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던 인류가 거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수평선 너머로 나아간 이유가 항해의 유용성 때문은 아니다. 그 너머를 갈망하는 꿈이 그들을 세계의 끝으로 몰아갔고, 점점 뒤로 밀려나는 경계를 앞지른 순간에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발견했다. 유용성 너머에는 내밀한 꿈이 있다. -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