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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 월드
플레이어 지음 / PAGE NOT FOUND / 2025년 11월
평점 :
생소하고 독특한 책을 만났다. 한때 아이들이 즐겼던 게임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표지그림. 최근 출간된 <NPC 월드>를 손에 쥐고 커다란 물음표를 품었다. NPC, 대체 뭐지? 무슨 의미일까?
NPC는 ‘Non-player character’라는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를 말한다. 게임에서 명령에 따라 고정된 대사를 반복하거나 사전에 주어진 행동을 반복하는 존재다. 상점 주인이나 플레이어를 도와서 안내하고 미션을 건네주는 인물을 NPC라고 하는데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자유의지는 없다. 때론 NPC를 현실 사회나 인물을 묘사하거나 풍자할 때 쓰기도 한다. 주체적인 생각이나 판단이 아닌 타인의 행동이나 패턴을 복제하듯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 “사랑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처럼 감정 없이 똑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할 때 ‘NPC 모드에 진입했다’고 표현한다고 한다. 자유의지도, 감정도, 주체적인 생각도 없이 주어진 행동만 반복하는 세상. 그것이 바로 ‘NPC 월드’다.
울타리가 둘러쳐진 마을, 비슷한 모양의 집들, 그 속에 모여있는 캐릭터들. 많은 캐릭터 중 유일하게 색깔을 지닌 한 플레이어가 던지는 말이 <NPC 월드>의 출발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생각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깊은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우리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 바로 휴대전화다. 일어날 시간을 알리는 알람도,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시간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나 세상의 모든 소식을 우리는 휴대전화를 통해 ‘확인’한다. 매일 하루에도 수십차례 반복되는 이런 확인 과정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의 시간을, 주의를 몇 초 붙잡아두는 것만으로 돈이 된다는 것. 바로 ‘주목경제’다.
왜 우리는 스스로 스크롤을 내린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당겨지고 있는지, 왜 “다음”을 누른 적이 없는데도 ‘다음’에 멈춰있는지, 어떻게 그 몇 초의 지연이 당신의 생각을 아주 얇게 슬라이스 하는자. 거기까지 보면, 당신은 아마도 어떤 버튼을 끌지. 무엇을 남길지 스스로 정하게 될 것이다. 그 결정이야말로 주목경제가 제일 싫어하는 장면이다. 스스로 멈추는 사람, 스스로 길게 보는 사람, 얇아진 생각을 다시 두껍게 만들겠다는 사람. 그 사람이 많아질수록, “NPC같다”는 말은 장난으로만 남게 된다. 그리고 서버는 꺼지지 않는다. -25~26쪽.
‘서버가 꺼지지 않는다’는 말은 반대로 지금처럼 계속하면 서버가 꺼진다는 말이다. 정말일까?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에 서버가 꺼진다고 했을까. 일상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 그때 우리는 어떻게 결정의 내리는가. 언젠가 봤던 숏폼, 알고리즘에 의한 익숙한 영상, 거기에 달린 덧글. 솔직히 이런 것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이 없다. 특히 정치면으로 향하게 그 정도는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게 된다. 수많은 정치기사와 평론 중 자신이 접한 단 몇 개로 전체를 대신한다.
정치판에는 세 부류만 남는다. “극구, 극좌, 중도를 가장한 NPC들”. 언론과 정치를 바라보면 화면은 풍성해 보이지만, 건설적으로 논의된 안건은 줄어들고 그저 이곳도 저곳도 아닌 싸움판이다. 이게 요즘의 한국이다. -39쪽.
독특한 책이어서 접근한 <NPC 월드>에서 요즘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매순간순간을 나의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한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노선에 의한 것이었다니 충격이었다. 지난 20세기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그 속의 수동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가 사태를 어떻게 몰고 갔는지, 감정마저 시스템화하고 모든 것을 자동화하려는 <NPC 월드>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애써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고민해야할 대목이다.
분노는 사회가 망가졌다는 증거이자, 여전히 반응할 수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문제는 분노 자체가 아니라 방향 없는 분노다. -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