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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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방학이었으면 좋겠다.”


3월의 첫날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이 말했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을 하루 앞두고 벌써 방학 타령이라니. 고등학생인 둘째는 그렇다 쳐도 대학생인 첫째까지?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렇게나 가기 싫은 장소였던가. 잔뜩 침울해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만, 대학 졸업한 그해의 3월이 제일 슬펐어.”

왜요?”

더이상 학생이 아니란 걸 알았거든. 엄만 지금도 학교에 가고 싶어. 정 그렇게 싫으면 엄마가 대리출석이라도 해줄까? 고딩은 몰라도 대학 강의실은 가능할 것 같은데?”

에엑? 엄마! 농담도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학교 보내려고 별소릴 다 하셔.”

사차원 엄마가 학교에 와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좀전까지 학교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던 녀석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 난 살짝 아쉬웠다.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나?

 


청소년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아주 오래전에 지나온, 당시엔 두 아들처럼 하루하루가 지겹고 힘들기만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기에 설레기까지 하다.

 


온통 짙은 초록의 숲이 그려진 <고요한 우연>. 표지만 언뜻 보고 숲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 했다. 그러다 표지 아래쪽, 계단에 앉은 소녀가 고양이 두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네가 궁금해졌어. 아주 많이.”라는 부제처럼. ‘가 누굴까? 혹시 고양이?


 

이쪽으로 와서 앉을래?”

괜찮아.”

긴장할 것 하나도 없어.”


책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심상찮은 분위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 아니, ‘누구에게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즉각 해당 학생과 같은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는 담임 선생님, 학생부장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상담실로 향한다. 음료수를 내어주며 선생님은 그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던 그 아이가 마치 증발이라도 해 버린 것처럼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극도로 말을 조심해서 건네는 선생님들의 의중은 단 하나. 넌 뭔가 아는 게 없냐는 것.

 


는 머리가 새하얘진다. 외모도, 성적도, 성격도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하다 못해 스스로도 심심하다고 여기는 자신에게 선생님들의 관심이 쏠리니 어느 때보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아이가 사건 사고에 휘말렸을 가능성도 있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가운데 순간 떠오른 것. 그 아이가 새벽에 자신이 보낸 SNS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사실.

 


단 두 장에 불과한 초입 부분을 읽으며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대체 누굴까. 왜 사라졌을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이가 사라진 지 나흘이나 지났다고? 그 아이는 무사한 걸까?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 소설은 (이수현)’의 서술로 진행된다. 같은 반 아이들에 대해서, 교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그런 가운데 왠지 자꾸만 시선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끌리는 아이들을 알기 위해 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 아이의 SNS 계정을 통해 그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책은 한 번 잡으면 바로 끝으로 내달릴 만큼 몰입감이 높은 작품이다. 교실 바로 앞뒤로 앉아 있으면서도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나 전화통화 보다 SNS가 친숙한 아이들. 그렇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첨엔 고요한 우연이란 제목이 무슨 의미일까. 의문을 품었다. 무엇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까. ‘고요함일까. ‘우연일까. 궁금증은 본문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오늘 일을 장난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이건 명백한 괴롭힘이었다. 아이들은 고요가 먼저 미움받을 행동을 했다고 말한다. 미움받을 행동을 하면 괴롭혀도 괜찮은 걸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면 상대를 괴롭힐 권리가 주어지는 걸까.- 59


 

열일곱,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지아, 내 친구 서지아. - 178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도 밝게 빛나는 별이 있다고 말해 주던 다정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은 스물세 번째 피규어라고 했던 이우연의 말도 떠올랐다. 나 또한 그 어디쯤 서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엄마의 특별 한정판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꼭 필요했던 피규어다. 그걸로 됐다. 그러면 충분했다. - 188~189쪽


 

사람들은 달을 올려다본다고만 생각하지, 달이 지구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달인데 말이야. -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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