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마지막 서점
매들린 마틴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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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책. 이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을까. 무자비하고 참혹한 전투가 이어지는 전쟁과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몰입하는 독서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결코 한데 묶을 수 없다고 여겨지지만 예측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오래전 황석영 작가의 강연회에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작가는 한국전쟁 때 대구로 피난 갔었는데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도 어머니께선 <걸리버 여행기><소공자>를 사다주셨다고. 총성과 폭격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책을 인쇄하고 출판하고 또 그것을 읽는 것이 가능한가 싶었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다.


 

전쟁과 책. 어쩌면 이 둘이야말로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터로 간 책들>에서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나치 독일에 대항하고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전시 도서 진중문고를 보급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군인들이 배낭이나 주머니에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제작된 페이퍼북은 당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에서는 내전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에서 정부의 무자비한 진압과 학살로 공포 속에서 살아가던 다라야 시민들이 폐허 속에서 찾아낸 책을 모아 만든 비밀 지하 도서관을 포탄을 피해 드나들면서 희망을 발견해나가는 모습을 이야기한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바로 책이었다.

 

 


그레이스는 늘 런던에서 사는 날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낡은 여행가방을 들고 친구 비브와 함께 런던에 도착한 그녀는 곧장 브리튼가로 향한다. 그녀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삼촌네에서도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자 엄마의 친구인 웨더포드 아주머니에게 방을 빌려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거기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에번스 씨의 가게에 일하게 되는데, 그곳이 하필 서점이었다. 책에 대한 지식도 책을 읽어본 적도 없었던 그레이스는 실망감을 안고 서점 [프림로즈 힐]을 찾아간다. 하지만 우중충한 외관, 음울한 실내 분위기, 책장 가득한 먼지. 그리고 일하고 싶다는 그레이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는 에번스씨. [프림로즈 힐]과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삐걱거렸다. 런던에서 살기 위해 일자리가 절실했던 그레이스는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보조 점원으로 일하게 된다.

 



책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서점에서 일하게 된 그레이스. 그녀의 서점 근무는 첫날부터 우왕좌왕이었다. 에반스씨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있으라고 했지만 책장의 먼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레이스는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하지만 이내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그런 가운데 서점을 찾은 손님이 그녀에게 책의 위치를 묻는다. 서가의 위치를 몰라 당황하던 그녀는 다른 손님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프림로즈 힐]에 자주 왔었다는 그는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그레이스에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추천한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온 그레이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불길한 예감, 바로 전쟁다.

 



피난을 가고 징집이 이루어지고 등화관제와 공습....전쟁 중에 책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럴수록 더욱 책은 필요했다. 사람들에겐 즐길 거리가 필요했다. 그레이스는 삼촌네 가게에서의 경험을 되살려서 서점에 손님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노력하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금방 끝날 거라 예상했던 전쟁은 몇 년이고 계속됐다. 평범한 일상은 전쟁으로 인해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참혹한 전쟁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 그리고 이웃을 떠나보냈고 삶의 터전마저 잃었지만 절망 속에서도 실낱처럼 가느다란 희망을 찾기 위해 그들은 서로 위로했다. 그레이스가 낭독하는 것을 듣기 위해 사람들은 서점으로 모여들었고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가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책이 지닌 무한한 이야기의 힘이란 게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두 문장을 읽을 때에는 혀가 꼬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을까 불편한 마음을 의식했다. 그리고 저 멀리 어딘가에서 폭탄이 터져 굉음이 그레이스의 마음을 마구 어지럽힐 때에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잊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군중들의 얼굴이 사라지고 오로지 이야기만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녀의 세상은 도로샤의 세상속으로 휘감겨 들어갔다. - 269

 


 

제인 에어가 그녀의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이는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전쟁과 위험에 맞서 그들을 통합하는 상징이었다. 제인 에어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자신과 맞닥뜨린 그 모든 것에 대처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가. 그리고 그레이스도 그 순간 책 속의 주인공으로부터 많은 용기를 끌어내고자 했다.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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