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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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 ♪


 

DJ. DOC의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식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주눅 들곤 했다. 나의 서툰 젓가락질을 흉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서.



 

가장 긴장됐던 순간은 결혼 전 신랑집에 인사하러 갔을 때였다. 어르신께서 형식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고 소탈하다고 신랑이 귀뜸해줬지만 그래도 혹 실수를 하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정말 다행인 건 신랑이 어르신께 내가 채식을 한다는 걸 미리 얘기해두었는지 식탁에 내가 꺼리는 음식은 없었다. 익숙하고 친숙한 반찬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어머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된장국에 넣은 멸치도 고기라고 안 먹었네?” 허걱....ㅠㅠ


 


아이를 기르면서도 아이가 혹 나의 젓가락질을 보고 배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식사 때 아이 맞은편 자리에 늘 신랑을 앉혔던 것도 아이의 시선이 나의 손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나름 선방한 것 같지만 종종 의문이 들었다. 대체 젓가락이 뭐길래, 그저 식사할 때 쓰는 도구 중 하나인 젓가락 때문에 이렇게 애를 태울 필요가 있나 싶어서.



 

작고 둥근 푸른 공 같은 지구를 젓가락이 집고 있는 모습에 쿡 웃음이 터졌다. X자로 교차된 젓가락이 꼭 나의 젓가락질을 보는 것 같아서. 표지 그림 덕분에 <너 누구니>가 담고 있는 얘기가 무엇일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더욱더 궁금해졌다. ‘젓가락에 대해 할 말이 얼마나 될까젓가락에 대해 무슨 얘길 하길래 책 한 권이 출간되었을까




궁금증에 책을 펼쳤는데 저자는 도리어 수수께끼로 맞받아치고 있다. 깊은밤 옛날얘기해 달라며 몰려온 손자손녀들을 대하듯 꼬부랑 이야기 열두 고개(수저 고개, 짝꿍 고개, 가락 고개, 밥상 고개, 사이 고개, 막대기 고개, 엄지 고개, 쌀밥 고개, 밈 고개, 저맹 고개, 분디나무 고개, 생명축제 고개)로 이끌고 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는 것처럼 흥겹게 나서보자.



젓가락은 옛날 유물이 아닙니다지금도 끼니때 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용하는 물건입니다신기하지 않습니까천 년 동안 내려온 젓가락과 젓가락질그 속에 한국인의 마음과 생활의식이 화석처럼 찍혀 있다면그것은 어떤 고전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 13~14.

 

 

책은 모두 12개의 장(고개), 각 장마다 두세 개의 꼬부랑길로 이뤄져 있는데 본문의 형식이 독특하다. 소주제마다 그에 관련 내용을 길게 서술하는, 기존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형식이 아니라 10줄 내외의 짤막한 글에 번호를 달아 놓았는데 마치 수수께끼의 힌트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 어느 때든 심지어 어느 부분을 펼쳐 읽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데 짧은 내용은 기억하기에도 용이해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한두 가지 꺼내어 말문을 여는데 활용하기 제격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중일 3국 중에서 쇠젓가락은 한국인만 쓴다는 거 알아? 그래서 수저라는 개념도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다지 뭐야.”라고 한다거나 일본에는 부부 젓가락 세트가 있는데 색깔과 길이를 다르게 만든 젓가락인데 셋트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고 해심지어 1억짜리고 있다던데상상이 돼?” “거기다 일본은 가족 간에도 젓가락을 따로 쓴대그래서 일회용 젓가락 와리바시가 나오게 되었다는데중국은 완전 반대래자기 젓가락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걸 허용하는데 친밀함을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하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대학진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잖아. 근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수저계급론기준표까지 있다고 하더라구. 놀랍지?” 







우리는 몇천 년 동안 사용해왔고지금도 매일 젓가락으로 식사를 한다그런데도 왜 우리는 왜 젓가락 행진곡이 작곡된 것처럼젓가락을 문화로 만들지 못했을까엉뚱하게 젓가락질도 못 하는 서양 사람이 만든 찹스틱 왈츠라는 곡을그걸 어쩌다 우리가 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젓가락 문화권에서 젓가락 왈츠 같은 음악이 작곡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이것도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면서 그냥 지나칠 것인가. - 47.

 


 

젓가락에 대한 흥미롭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젓가락의 출발은 뜨거운 음식을 먹기 위해서인데. 음식이 식지 않게 계속 끓였고 배고플 때 허겁지겁 먹다가 자꾸 화상을 입으니까 손가락을 보호하기 위해 젓가락을 쓰게 되었단다. 그리고 유인원과 인간은 닮은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DNA가 아니라 손을 이루고 있는 뼈와 힘줄, 근육이라고 한다. 특히 엄지손가락이 나머지 네 손가락과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그 점이 인류문명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그 버릇이 평생을 간다면서 이렇게 덧붙여놓았다. ‘막 젓가락질하는 사람치고 막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213)’ 충격이다. 지금이라도 젓가락질을 다시 배워야하는 걸까 고민이 된다.

 


알고 보면 쓸모 있고 신기한 젓가락에 대한 이야기, 일명 알쓸신젓이라고 할까? 일상 속의 소소한 것에 숨겨진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이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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