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놓치지 마 -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
이종수 지음 / 학고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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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는 제목만으로 무엇을 다루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책이다. 노란색 표지에 금박의 선이 서로 교차한 모양이 마치 사진찍기 전에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구도를 가늠해보는 것 같다. 함께 삶을 일궈가는 사랑하는 가족의 순간을, 일상에서 놓치기 싫은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데 대체 책은 어떤 것을 놓치면 안된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라는 부제와 표지의 동양화의 일부가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유일한 힌트인 셈이랄까.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 화가에게도 붓을 들어야 할 순간이 있듯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 지금 내 마음 두드리는 그림 한 점 있다면 첫걸음이 되기 충분하다. 보물찾기를 시작해보자. 이 봄 지나기 전에 길을 나서보는 거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 당신의 보물이 기다리고 있다. - 10


 

어떤 그림을 좋아하세요?” 사람들은 저자에게 자주 묻는다고 했다. 그 질문에 저자는 고심했던 것 같다. 수많은 그림 중에서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이에 저자는 우리 나라의 보물을 떠올린다. 다만 2,643점의 국보와 보물 가운데 그림은 303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비단이나 종이에 그리기 때문에 훼손되기 쉽다고 하지만 그렇다해도 겨우 이 정도인가. 놀랐다.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저자는 보물로 지정된 그림 중에서 22,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 가치나 작품의 의미에 있어 꼭 알아두어야 할 그림 4점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그림을 이야기한다. 이상, 현실, 역사, 보물 아닌 보물로 나누었는데 각각의 꼭지 제목만 보면 어떤 그림을 다루고 있는지 몇 개를 제외하고는 예상하기 어렵다. 저자가 소개한 그림에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한 그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낯선 그림이 더 많았다. 거기다 풍경화는 왜 그리도 다 비슷하게 보이는지. 이 모든 게 그림에 대한 지식이 짧기 때문일거라 생각하니 저자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짬짬이 책의 순서와 상관없이 끌리는 대목부터 읽어나갔는데 책장을 덮고도 특히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소개된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말을 타고 가던 선비가 고개를 돌려 나뭇가지에 시선이 머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저자는 화가가 자신의 봄을 그림 속 주인공에게 투영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선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나무 위의 꾀꼬리일까, 흩날리는 버들잎이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봄날 나는 어땠는가. 바삐 길을 가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깊어가는 봄을 마주했는가.


 

병아리를 낚아챈 고양이를 잡으려는 소동을 그린 김득신의 [야묘도추].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가서 당황한 어미닭과 당돌한 고양이를 한 대 후려치기 위해 담뱃대를 휘젓는 사내, 그 뒤의 여인. 이들의 모습을 잘 포착한 그림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 찬찬히, 때로는 그림을 부분적으로 살펴보니 이전에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똑같은 그림책을 매일 질리지도 않고 읽어달라고 하는 이유가 읽을때마다 그림에서 새로운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랬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고양이가 어미닭이 방심한 순간, 병아리를 입에 물자 고양이를 쫓으려는 사내와 여인의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랄까.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조선판 슬랩스틱 코미디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곤여만국전도].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 사제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당시로선 최신의 정보를 반영한 세계지도다. 하지만 이 지도의 가장 큰 의미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다는 데 있다. 조선에선 숙종 때인 1708, 중국 원본을 모사해 지도를 제작했는데 이 지도의 이본은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가로 531cm, 세로 172cm 8폭 병풍 속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담아낸 지도에는 이국적이고 희귀한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본문에 수록된 사진은 낡고 상태가 좋지 못해 어떤 지도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된 [곤여만국전도]가 복원작업을 마치고 봉선사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 사진을 함께 곁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원된 곤여만국전도를 바라보고 있는 월운 스님 (출처: 경기일보)]

 


마음을 둔 것에는 시선이 오래도록 머문다. 가슴에 담아둔 것은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어떠했나 돌아보게 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본 나의 시선에, 마음에, 가슴에 꼭꼭 눌러 담아둔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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