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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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의 고1 때다. 학부모총회가 있다고 해서 부지런히 학교 강당에 도착하니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면서 책을 읽으려고 편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책을 읽는 동안 주변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어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거였다. 총회에 드레스 코드라도 있었나? 당황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박, 총회 온 사람들 옷이 전부 블랙, 나만 빨강” “괘안음. 왼쪽에만 안 앉으면” “왼쪽? ?” “그럼 좌빨이잖아” “, 나 젤 왼쪽줄에 앉았는데?” “ㅋㅋ 완전 좌빨 인증이네우연히 왼쪽에, 우연히 나 홀로 빨간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완전 좌빨이 되어 버린 그 날, 생각했다. ‘좌빨? 내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좌파’, ‘우파’. 도대체, 언제부터, 나뉘게 되었을까. 정치가 좌우파로 나뉘게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였다. 혁명 중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을 중심으로 당시 다른 주장을 하는 세력들이 좌우로 앉았는데 이때 온건 개혁세력이 오른쪽에, 급진 개혁세력이 왼쪽에 앉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좌우파는 이념이나 계급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사회파 내부에 도 좌파와 우파가 있고 부르주아 진영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다. 결국 좌우는 어떤 사안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붉은 장식선과 커다란 붉은 글씨로 가득한 <슬기로운 좌파 생활>은 제목에 이어 우리, 좌파합시다!’란 부제에까지 좌파를 강조하고 있다. 대놓고 좌파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공표한 느낌이랄까? 아니나다를까 페미냐?”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좌파인데요.”

 


좌파! 그래, 빨갱이다. 평등주의자, 이갈리테리언이다, () 이갈리테리언,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중요하며, 삶에 있어서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좌파로서, 이갈리테리언으로서, 남녀평등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나의 믿음이다.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 - 10

 


이어 저자는 진보, 보수를 말한다. ‘보수가 자본주의를 지키고 좌파가 그 자본주의의 문제를 공격하는 것이 좌파인데, ‘보수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한 것이 진보라고. 흔히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가 싶다가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독자를 염두한 것인지 진보/보수, 좌파/우파, 이 네 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된다고 하지만 선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 각자 자신이 무엇을 것을 추구하고 가장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자신의 성향이 어떤지 실감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와 손잡은 언론의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오랫동안 살아온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부에서 하는 일에 거부하는 것이 나라 구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믿는 20대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 36.


 

한국에서 좌파가 사라지면 은밀한 토건과 음습한 거래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동단결하는 지점이 너무 많아진다. - 40.


 

저자는 한국의 좌파는 현재도 소수에 불과한데 앞으로 더 줄어들어 멸종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20대 좌파의 심각성을 본문 곳곳에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우려와 걱정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좌파의 자리가 절대적인 고정석인가? 그저 왼쪽에 앉아서 좌파가 된 것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하기에 남녀를, 세대를 갈라 서로를 향해 맹렬히 비난을 쏟아내는 현실에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세력이 좌파일텐데, 그렇다면 좌파, 우파는 상대적인 것이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세대에서도 좌파는 존재한다.

 


디바이드 앤 룰’, 영국이 인도를 통치할 때 인도 국민끼리 서로 분리시켜서 자기들끼리 싸우게 했던 대표적 식민지 통치 방식이다. 한국의 군사 정권도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차별을 두는 것은 야비한 방식이지만, 독재 시대에는 총독부 시절부터 익숙한 장치들이 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 56

 


게다가 한국의 좌파는 진보와 분리된 길을 걸어갈 거라니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우리나라의 모든 좌파들이 저자처럼 자신이 좌파라는 걸 밝히지 않고 살아가고 그래서 어떤 정당이나 시민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일상 속에서 생활 좌파로만 살아갈 거라고 하는데. 좌파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정치든 시민단체든 어떤 형식으로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적 추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또한 대선 후보경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결선투표를 언급하고 있는데 저자가 과연 민주당의 해당 당규를 확인하기는 했을까? 의문이 든다.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적 추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이 새로운 시대에 좌파는 어떻게 태어날까? <자본론>1876,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 공업 시대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며 그 모순이 첨예화되던 순간에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디지털의 전면화가 유토피아를 열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다음의 <자본론>은 텍스트로 된 책이 아니라 메타버스 안에서 카피레프트 공동체가 만들어낸 작은 약속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 212

 


대학입학 이후 줄곧 좌파로 살았다는 저자는 좌파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한국의 좌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사실 엄혹한 군사정권 아래에선 좌파는 입에 담기도, 가까이해서도 안 되는 단어였지만 21세기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좌파냐, 우파냐 선을 긋고 구분하기보다 우선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 여건, 사안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다음 결정하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생활 좌파로 남거나.

 


그럼에도 한국에 좌파들은 여전히 등장한다, 누가 그들을 이끌고 지도할까? 그런 건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하자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모순, 특히 한국 자본주의 모순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지만, 참기 싫은 사람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 297.

 


때론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말해준다. 5년 전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읍소했던 모습이 SNS로 퍼지면서 사회에 특수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 해당 특수학교는 2020년에 개교했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자신들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며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시위를 한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고 곧 집권당이 될 국민의힘 당대표는 오히려 경찰개입을 주문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과 함께 연대하겠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만약 이런 상황을 내가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나의 불편함을 피력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정의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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