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문화탐방기 - 마을의 소년들
지현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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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페미니스트. 최근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난 여자임에도 아직 이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검색을 해보니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은 옳지 않은 거니까. 그런데 왜 논란이 되는 걸까.


 

노란색 표지에 재기발랄한 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진 <소년문화탐방기>, 자그마한 크기와 표지만 보면 만화책이라고 오해할 것 같다. 책의 첫인상만큼 저자의 이력도 독특했다. 페미니스트 가수(이런 유형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로 활동하다가 무대에서 내려와 페미니즘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로서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 저자가 청소년, 그것도 소년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게 되는데 <소년문화탐방기>는 바로 그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로 들어간 페미니스트’ ‘게임하는 소년들’ ‘미디어 세계를 유영하기’ ‘마을? 공동체?’ ‘같이 놀래각 파트의 제목만 봐도 소년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인데 이것을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하는 걸까. 성인지 감수성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상황에서 아들 둘을 키우는 나로선 무척이나 궁금했다.


 

페미니즘은 소년들이 경험하던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질문하고 판단하고 바꾸고 버릴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이런 과정을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했다. - 13.

 


저자는 90년대 공동육아로 출발해서 이후 30여 년간 공동체를 일궈온 마을의 대안학교와 방과후수업에서 만났던 소년들과 나눈 대화와 그들의 반응을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서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라면 공유하고 있을 경험, PC방에 대한 느낌이나 경험을 비롯해서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방송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부분적으로 교사와 부모를 인터뷰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노는 방법을 배우는 아이들과 달리 놀이가 없는 유년을 보내는 아이들은 청소년으로 성장했을 때 여전히 노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즐거움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몰입하는 것이 게임, 유튜브,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다. 청소년들과 게임, 유튜브, 덕질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스마트 미디어에 의존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스마트 미디어가 곧 자신이고 자신이 속한 세계이고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세계가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청소년들에게 노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 42

 


인상적인 것은 갈등 공포증 세대였다. 누군가의 싫은 행동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학생들간의 갈등이 다툼으로 확대될 때,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를 돌아보고 고민을 나누는 대목을 보면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늘 고민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이전의 생각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는데, 그만큼 해결이 쉽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저학년 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자신이 소속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주장을 그대로 옮기기 일쑤다. 그것은 폭력과 혐오를 드러낼수록 학교 동료들과 친구집단에서 핵 인싸로 대접받고 남성에게 주어진 젠더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또래 집단 안의 경험이 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육이나 질타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옆에서 동행해줄 동료 시민이다. 온라인 공간이 키워낸 민주시민에게 양육자나 교사, 어른의 권위는 더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184.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놀이이고 그 놀이문화를 마음껏 즐긴 소년들은 이후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소년들의 마음을 묻고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소년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가 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둘째가 떠올랐다. 3월이 되면 고등학생이 되는 둘째는 유튜브와 친구와의 게임에 빠져있다. 적당하게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과하게 몰입하는 것이 걱정인데 책에 등장한 아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하지 않으며 게임을 통해 배운다고 해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저자가 인터뷰했던 마을의 소년들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걸까. 일부일까. 대다수에 속할까. 만약 도시의 소년들이라면?


 

아쉬운 점도 있다. 저자는 초반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꺼리고 성교육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과 소통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불만을 토해내는 학생을 향해 필요 없으면 나가!”라고 소리쳤다고 털어놓았는데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페미니즘을 아이들, 소년들에게 교육한다는 게 쉽지 않으리란 건 이미 예상했을 터인데, 그런데? 페미니즘이란 사회에 만연한 권력이 옳지 않고 정의롭지 않음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 순간 저자의 행동이 그야말로 권위적인 것은 아니었을지. 물론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지만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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