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이론 -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유산
윤성철 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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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집이 좁게 느껴진다. 작년 2천여 권의 책을 정리한 이후로 빈 공간이 제법 보였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 다시 책이 탑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길에 만나게 되는 돌탑엔 작은 돌 하나마다 저마다의 소망과 염원이 깃들어 있는데. 저 책탑은 어떨까. 무언가에 대한 염원이 녹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욕망이 드러난 것에 불과한 것일까.

 


현재 상황이 알려주는 것, 그 해결책은 간단하다. 또다시 책을 정리할 시점이 돌아왔다. 거실과 방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서 책을 솎아내야 한다. 어떤 책을, 어떻게, 얼마나, 정리할 것인가. 지금까지 나의 기준은 딱 두 가지. 내가 이 책을 언제라도 다시 읽을 것인가. 이 책은 과연 아이들에게 추천할 만한가. 아이들의 가슴과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책인가. 조건에 충족한다면 보관, 아니라면 정리. 말은 간단하지만 엄청난 갈등의 시간을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단 하나의 이론>, 책 제목만 봤을 땐 그냥 스치고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유산이라는 부제와 표지 그림이 나를 붙잡았다. 다크블루 바탕에 거대한 산맥, 그 위의 둥근달. 그런데 그림의 방향이 왜 세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땅(산맥)이 가로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아주 먼 곳에서 지구를 바라봤을 때 지구의 옆면 일부만을 그린 걸까. 아니면 가로를 세로로 돌리는 데서 발상의 전환을 나타낸 걸까?

 


만일 기존의 모든 과학 지식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일대 혁명이 일어나, 다음 세대에 물려줄 지식이 단 한 문장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 7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질문이다. 이 책은 이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천체물리학자, 사회학자, 미생물학자. 신경심리학자, 통계물리학자, 인지심리학자, 신경인류학자들이 모였다. 저술이나 강연 등의 방식으로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전문지식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열 일을 제치고서 두 눈을 부릅떠야 할 때다.

 


신을 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호기롭게 책장을 펼치자마자 마주한 문장에서 머리가 띵해졌다. 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독서모임에서 중세를 다룬 책을 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은 내게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 을 과학자, 그것도 천체물리학자가 얘기하고 있다. 불시에 허를 찔렸지만 대체 무슨 얘길하려고 신을 들먹이시나 싶어 더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항상 우주라는 말에서 신을 떠올린다(17)’며 강연회에서 자주 접하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윤성철님은 영화 <두 교황>의 한 대목을 언급하면서 신과 종교에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언급하면서 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원자를 데려온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이자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는 일정한 궤도를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그 원자가 어떻게 세상의 변화를 설명한다는 거지?

 


변함없는 공간이라던 우주가 현대에 와서는 팽창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이것 역시 이후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고정되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주를 가리켜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든 원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성을 보인다면, 이 세상은 시계와 같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모습만 하고 있을 것이다.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필요하다. () , 일탈은 창조의 근원이다. - 26.

 


사회학자 노명우님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말한다. 45억 년의 지구에서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은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그보다 더 이른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탐험가의 이름을 붙인 쇼베 동굴 벽에 단순한 선으로 그린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잊는다. 그리고 이내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곳이 빛 한줄기 비치지 않는 어두운 동굴이라는 것. 전기도 없던 3만 년 전, 그림을 그린 이는 울퉁불퉁한 동굴 벽에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갖는다. 그림을 그리는 이의 곁에는 틀림없이 불을 비춰준 동료가 함께했을거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참혹한 전쟁 중에 극단의 굶주림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이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시대를 겪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혼자가 아니었듯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위험에는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바이러스가 아닌 이상,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단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일깨운다. 바이러스는 말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 72

 


리처드 파인만의 질문에 대표 학자들의 답변이 수록된 <단 하나의 이론>은 이후 미생물학자 김응빈님의 유전자를 통해 읽을 수 있는 [생명이란 우주의 메모리 반도체이다], 신경심리학자 김학진님의 인간의 감정과 공감에 대한 [마음은 신체와 환경의 소통에 기원한다], 통계물리학자 김범준님은 물리학 이론인 열역학을 다루는 [인류 지식의 원전은 엔트로피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님의 [인간의 욕구는 전염된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님의 진화론을 영혼과 마음으로 확장시킨 [인간 정신은 진화의 결과다]로 이어지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제법 눈에 띄었다. 과학지식을 다룬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워 한참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했지만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하듯 여러 도표와 그림, 사진이 본문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도움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학자들이 본문에 참고문헌으로 사용한 책이나 논문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 내용의 근거와 이해를 돕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일곱 명의 학자들이 저마다 독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을 추천하는 부분을 수록했으면 어떨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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