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 Philos 시리즈 7
제프리 삭스 지음, 이종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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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벽돌책 깨기를 시도하고 있다. 700쪽이 넘어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벽돌책을 첨엔 모으는데 몰두했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일주일 몇 번씩 횟수를 정해두고 조금씩 느리게 읽어가고 있는데 은근히 재미가 있다. 어쩌다 읽는 간격이 뜸해지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렇게 읽은 벽돌책이 한 권씩 쌓여갈 때 느낌은 실로 특별하다.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란 부제가 달린 <지리 기술 제도>. 제목을 보고 언뜻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인류는 왜 민족 간에 서로 정복하고 지배하는지, 왜 대륙마다 문명이 탄생하고 발달하는 속도가 다른지를 총기와 병균과 금속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통해 분석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럽이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맞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게 된 것은 대포로 무장한 범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는 카를로 치폴라의 <대포 범선 제국>. 이들 책의 공통점은 ‘3’. 인류의 전체 혹은 일부의 역사 중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핵심 키워드 세 가지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이번엔 대체 어떤 것으로 전개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프리 삭스하면 천재란 말이 떠오른다. 하버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해서 20대에 하버드대학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다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꼽힌다. 그의 <빈곤의 종말>을 호기심이 발동해서 덥석 집었다가 다 읽지 못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 출간된 <지리 기술 제도>도 내가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염려가 됐지만 제목의 끌림이 더 강력했다. 책의 원제는 <The Ages of Globalization>, ‘세계화의 시대. 여기에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라는 부제를 더해 추측해보면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7번의 세계화, 시대로 그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지리, 기술, 제도가 아닐까. 역사서를 읽는 기분으로 도전했다.


 

이 책은 세계화의 복잡성을 다루고 있다. (16)


 

저자는 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역사를 바꾼 일곱 번의 세계화의 시대를 거쳤다고 한다.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기마 시대, 고전 시대, 해양 시대, 산업 시대, 디지털 시대. 이렇게 구분한 다음 각 시대의 특징과 어떻게 해서 다음 시대로 진행되었는지 지리, 기술, 제도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인구과잉은 곧 식량부족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멜서스의 인구론을 학계는 대체로 빗나간 예언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이 멜서스의 비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짚는다. ‘유라시아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인상적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유라시아에 저자는 경제적 개념을 도입해서 설명한다. 기후나 자원의 측면에서 유라시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리한 조건들을 갖고 있다고 말이다. 현재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진화하고 어디로 이동했는지 후기 구석기에 이르러 인류가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는지, 신석기 시대에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며 경작을 하게 되는데 이때 목축, 농업에 최적의 조건인 행운의 위도가 바로 유라시아였다고 말한다.


 

평이한 문장에 본문 곳곳의 지도와 그래프 덕분에 책장이 술술 넘어가던 책은 5정치의 세계화부터 내용이 복잡해지기 시작된다.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대륙을 가로질러 동서양의 물자가 이동하고 그 결과 제국주의로 열강의 대열에 오르는 나라가 등장한다.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시작된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과 그로 인한 희생된 나라를 서술한 대목은 우리가 일제식민지를 겪은 아픈 역사를 지녔기 때문인지 마음이 아팠다. 일곱 번째 맞는 세계화로 저자는 디지털 혁명을 꼽는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여서 빈부격차와 불평등 문제는 갈수록 심화된다는 것에 시종일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해 앞으로 맞이하게 될 일은 앞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저자는 말한다. ‘인류는 온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광범위한 지역을 관통하여 특색 있는 다양한 상품들을 교환할 수 있다(16)’. 이 말을 우리는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희망을 말한다.


 

때때로 우리는 서로 잘 돕거나 화합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10만 년 전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형성한 추론과 협력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의 인류는 서로 간의 이해관계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깨닫고 있다. 이와 함께 인류의 희망은 공동의 역사와 인간 본성에서 오는 교훈을 활용하여 세계적 규모의 새로운 협력 시대를 구축하는 일에 있다. - 326.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나온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듯 다가올 미래 또한 그렇지 않을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경험이 결국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가 폭풍우 같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다는 나비효과란 말이 지닌 의미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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