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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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만화 <아스테릭스>. 우락부락한 몸집의 독특한 개성의 해적들이 바다를 누비며 벌이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서 그 만화의 역사 왜곡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책이 다시 출간되었다고 해서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왜곡이 있었는지... 그리고 해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만화 <원피스>. 주인공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데 초파, 상디 같은 개성있는 동료들과 전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게 늘어져서 보다가 이제 그만! 외쳐버렸다. 지금쯤이면 100권이 출간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인류 모두의 적>을 봤을 때는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며칠 후 다시 보았을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라는 부제였다. 내가 아무리 세계사에 무지하다고 해도 저런, 특별한 해적이 있었다면 모를 수가 있나?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라도 배우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얘길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짐작가는 게 있었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이, 나라에겐 틀림없이 이 해적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터. 되도록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싶지 않을까?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만 봐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생각의 고리가 여기에 이르자 관심이 생겼다. 알고 싶어졌다. 세계사를 바꿔놓았다는 이 정체불명의 해적이.

 

이 두 배가 인도양에서 맞닥뜨린 사건은 그런 미세한 원인들이 세계사에 큰 파급 효과를 낳은 경우였다. 역사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대치는 대체로 사소한 풍돌, 즉 금세 꺼져버리는 불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그은 성냥불이 온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성냥불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 20.

 

날씨는 화창했다로 시작한 책은 16959, 수라트 서쪽 인도양에서 해적선이 무굴제국의 보물선(건스웨이호)을 습격하던 날을 전한다. ‘파국적 결과는 지극히 사소한 실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라며 우연의 연속인지, 운명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건스웨이호의 망꾼이 경종을 몇 초 늦게 울린 것을 시작으로 대포의 미세한 결함으로 대포가 폭발하면서 포수가 즉사해버리고 상대편 영국배(펜시호)에서 쏜 포탄 중 하나는 아주 정확하게 날아와 주 돛대 아래쪽을 맞춰 가장 파괴적인 타격을 입히고 만 것이다.

 

세상을 경악에 빠뜨린 악명 높은 해적에 대해, 그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인류 모두의 적>5(1[원정], 2[선상반란], 3[약탈] , 4[추적], 5[재판])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주인공, 잉글랜드 데번셔 출신의 청년이 영국 왕립 해군에 입대와 당시 해군 입대와 관련한 배경(‘부랑자 단속법에 의해 부랑자나 난민들은 채찍질이나 해군 입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헨리 에브리라는 미스터리에 싸인 그의 이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이없이 보물선을 약탈당한 무굴제국이 오래전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조화롭게 공존하던 힌두 문화와 무슬림 문화가 어떻게 깨어졌는지 풀어낸다.

 

모든 위대한 전설적인 인물의 출생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고쳐 써지게 마련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이야기에 이런저런 소문과 풍문이 더해지고, 교묘하게 수정되며 다층적으로 짜인다. 한동안 헨리 에브리는 만신전에 묻힌 여느 인물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영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인자였다. 또 폭도였고,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었으며, 국가의 적이었고, 해적왕이었다. 그러고는 유령이 되었다. - 33~34

 

1650년대 말에 두 화면으로 에브리의 탄생과 아우랑제브의 즉위를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둘의 충돌 이후로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하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서 두 세기 이상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61.

 

15세기부터 세계는 바야흐로 대항해시대. 바다를 주름잡던 영국은 공공연히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동인도회사의 법인설립을 인가하고 무굴제국과 손을 잡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그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에브리에 의해 습격을 당하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던 황제의 직계 가족이 모욕적인 일을 겪자 무굴제국의 황제는 동인도회사와의 무역을 끊어버린다. 해적들의 우두머리, 에브리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리어 다급해진 건 영국이었다. 에브리와 그의 일당을 인류 모두의 적이라 하여 현상금을 내걸고 공개수배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런 다음 모굴 제국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인도 지역에서 대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훗날 인도가 대영제국과 동인도회사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결정적인 시초가 된 셈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적선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에브리로부터 대영제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궁금했다. 에브리가 해적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연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것이 운명이 되었다고 하기엔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에브리의 기록은 생각만큼 많이 남겨져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른 기록을 통해 그의 숨겨진 이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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