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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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이었다. 중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크게 반발하면서 급기야 코로나19 백신접종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집단행동은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자신의 이권과 기득권을 놓치지 않는 데만 몰두한 듯했다.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보다 못한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을 일삼는 그들이 사회의 지도층이자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도 변함없이 존경을 받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 왜 그들로 인한 창피함은 우리들의 몫인가. 그들의 행위가 왜 이토록 수치스러운가.



인간과 괴물의 마음이란 부제의 책 <수치>의 표지를 한참 바라봤다. 흑백의 사람 옆모습이 아래위로 나뉜 표지를 보면서 온라인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착시 이미지가 떠올랐다. 젊은 여인의 옆모습이라고 여겼던 그림이 어느새 매부리코의 노파 얼굴로 바뀌고 아리따운 여인으로 보였던 그림은 둥지로 날아드는 새였으며 가운데가 불룩하니 휘었다고 생각한 선은 알고 보면 휘어짐이 없는 직선이었다. 이런 경험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흑백의 두 얼굴이 상징하는 건 어쩌면 뇌의 착시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과 수치는 어떻게 다른가. 같은 감정인가. 늘 궁금했다. 심리학과 철학, 상담심리학의 이력을 지닌 저자는 첫 문장에 나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내어놓는다. ‘부끄러움수치와 같은 뜻을 가진다고. 차이점이 있다면 부끄러움보다 수치가 좀 더 부정적인 의미를 띄고 부끄러움은 순 우리말이지만 수치는 한자어라고 말한다. 좋은 감정이지만 나쁜 감정이기도 한 두 얼굴을 지닌 감정 수치. 저자는 수치의 두 가지 얼굴에 대해 세세하게 풀어놓는다.



우리가 앞으로 탐구할 낯붉힘의 감정인 수치는 조금 특별한 감정이다. 수치는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가진 감정이기 때문이다. - 6.



책은 크게 다섯 부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각 부는 다시 주제에 따라 2~4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1수치, 감정과 문화부끄러움의 감정부끄러움의 언어문화라는 장에서 부끄러움이 어떤 감정인지 알기 위해 감정이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사람의 감정 변화와 관련해서는 뇌의 어느 부위가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을 통해 살펴본다. 부끄러움의 옛말이 붓그럽다붓그리다란 것과 부끄러움이 일차 감정이 아니라 사회감정인 이차감정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인간이 감정을 느낄 때 신체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동안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 접했던 대목이 많아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표시해 놓은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수치의 의미를 표로 나타내놓아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에 좋았다.



이차 감정이 없는 짐승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지만,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지각만 한다면 이 또한 인간이 아니다. 그것을 내면에서 다시 불러일으켜서 느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다. - 75.



2수치, 아래쪽 얼굴부터 본격적으로 수치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수치란 감정의 탄생을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에게로 포커스를 맞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몸으로 지내던 그들이 뱀의 유혹과 부추김에 선악과를 먹은 이후 갑자기 수치, 그것도 부정적인 감정을 알게 되는데 그 순간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되는 순간 생겨난 감정이 바로 수치다라고.



수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 길은 이전처럼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엄혹한 현실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 125.



얼마전에 읽었던 <실낙원>이 바로 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인데, 기독교를 믿지 않는 내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느님을 불복종한 벌로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자 그들이 서로에게 취했던 행동이었다. 신의 완전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인간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보다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질책하는 장면, 수치스러운 모습이었다.



이후부터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이 동원되고 리비도라는 낯선 용어를 통해 인간의 수치가 신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이전만큼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브래드쇼는 수치가 인간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악마적인 존재로 일컬었는데 수치로 인한 질병을 언급하는 대목은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 뉴스를 보면 우리가 수치심에 둔감한 사회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폭행을 가하고 젊은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가십거리로 생각하고 정치인은 어제 했던 말을 오늘 뒤집기 일쑤다. 부끄러움, 수치란 감정이 없는 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간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부분을 갖고 있지만 그 역시도 인간다움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했을 때 그걸 재빨리 알아차리고 수정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용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하다. 인간의 감정의 숨은 이면을 알고자 하는 이가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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