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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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이었다. 지구의 역사 중에서 감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지구의 나이를 45억년으로 봤을 때, 박테리아는 35억년, 바이러스는 45억년과 35억년 사이쯤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런 다음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감염병이 있었는지 짚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언급된 아테네 역병(장티푸스 추정), 로마제국의 안토니우스 역병(천연두, 홍역) 같은 감염병을 비롯해서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는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최대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5세기 신대륙 정복에 나선 유럽인들에게 묻어간 천연두로 인해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95%가 사라졌으며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은 1년 조금 넘는 동안 세계인구의 5천만~1억명이 희생된 역사상 최단기간에 최대 사망자를 낸 팬데믹이었다.

 

 

그리고 2020,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현대 의학과 과학은 과거에 비해 눈부시게 발달했는데도 감염병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감염병 인류>는 검은 옷에 날카로운 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뒤집어쓴 페스트 치료사가 그려진 표지에서 까뮈의 <페스트>를 연상시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란 부제와 띠지에 적힌 코로나19 팬데믹의 이정표 같은 책이라는 이재갑 교수의 문장이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감염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는데 <감염병 인류>로 그것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책은 신경인류학자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의 공동저술로 이루어졌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의 혼란을 언급하는데 202012월 말 전세계 사망자가 170만 명이라는 대목에서 놀랐다. 2021424일 현재 전세계 확진자는 14천 명을 훌쩍 넘었고 사망자는 3백만 명이 넘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코로나-19는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인류를 괴롭히는 1400여종의 병원체 대부분은 인류 스스로 불러들인 녀석들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진화사는 곧 감염병의 진화사입니다. - 8

 

 

책은 1장에서 인류의 진화와 감염병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언급하는데 두 저자의 전공과 관련있는 부분이어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특히 코로나-19에 대해 너의 이름은’ ‘너의 정체는’ ‘너의 치료는으로 나누어 차분하게 코로나-19에 접근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조금 누그러뜨리는 느낌이 들었다.

 

기술혁신은 늘 대재앙을 불러왔습니다. 인류가 자랑하는 신석기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은 모두 인류를 큰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감염균은 새롭게 변화한 환경에 재빨리 적응했고, 수많은 사람과 가족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사실 기술혁신은 역설적으로 인류사적 퇴보에 가깝습니다. -37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심리적 고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조상의 삶, 우리 조상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시의 인류가 역병을 접했을 때 보이던 행동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우리 안의 원시인입니다. - 69

 

 

인류의 역사에는 주기적으로 바이러스 유행이 있었다고 하는데 인류가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면서 쥐와 파리 같은 불청객과 함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함께 반갑지 않은 동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의 첫 단추로 짐작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갈수록 점점 지독하고 심각해진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는 늘 팬데믹 지구에서 살아왔습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팬데믹에 낯선 목록이 하나 더해진 것뿐이죠. - 91.

 

 

기생체와 숙주, 면역체계에 관해서는 미생물, 기생충,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쪽으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면역을 수비하는 쪽으로 설명해놓았다. 인류의 역사는 불의 발견으로 획기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게 아니었단다. 불과 옷의 발명으로 인해 인간은 결핵과 발진티푸스 같은 신종 감염병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종 감염균은 도표로 된 병원체 피라미드을 수록해 놓아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수비팀인 면역이 고장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알레르기의 역습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하니 놀라웠다.

 

 

기생충은 기생충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끝없는 군비경쟁을 벌이면서 애매한 친구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 오랜 세월 동안 감염균과 면역계는 공진화했습니다. 너무 약한 면역도 좋지 않지만, 너무 면역도 좋지 않습니다. (……) 그런데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도 감염병과 공진화했습니다. - 174.

 

 

이후부터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감염병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지만 단점도 많아서 혐오와 회피, 두려움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한센병이 유전되지 않고 치료도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혐오와 편견 때문에 그들에게 인간으로서는 해선 안 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는 대목은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모두를 혐오합니다. ‘말고는 다 더럽답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감염병 상황에 부닥치면 모두 불안합니다. 누가 감염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점점 가속화됩니다. 고리를 끊지 않으면 끔찍한 비극이 발생합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이미 무수하게 겪어온 일입니다. - 261

 

<감염병 인류> 전체를 꿰뚫는 단어를 뭘까. 이 책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단어 하나를 선택했다. 본문에서 이미 여러 번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단어. 바로 공진화이다. 공진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둘 이상 혹은 여러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여 가는 것이다. 첨단정보가 돈이 되고 권력이 되면서부터 핵심 정보를 캐내려는 해커와 막고 보완하는 화이트 해커의 경쟁이 치열한 것처럼 인류의 역사는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듯이 감염균과 인간의 면역체계 또한 비슷한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언제 끝이 날지 결론이 내는 건 섣부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무조건적인 두려움과 공포, 타인을 혐오하는 것으로는 팬데믹 사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철함이 아닐까.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각자가 자신의 도덕관, 윤리관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 즉 인간에 대한 투명하고 정직한 이해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불확실하고,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인간과 질병의 역사에 관한 인류학적 지혜라는 이름의 책입니다. 책의 앞부분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중간중간 비어 있으며, 찢어진 페이지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전입니다. 그 책을 한 손에 쥐고, 우리는 이제 출발점에 섰습니다. -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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