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상자 베틀북 그림책 86
데이비드 위스너 지음 / 베틀북 / 2007년 4월
구판절판


역시 데이비드 위즈너다. 지금까지 그의 그림책을 여섯권 봤는데 여섯권 모두 대만족이다.

척 보기에도 빨간색 표지가 무척 강렬하다. 앞표지의 정중앙에 자리한 검은색 원, 저게 대체 뭐지?...하는 생각에 표지를 쫙 펼치니 그제야 정체가 드러난다. 다름아닌 물고기의 눈이다. 그리고 그 물고기 눈동자에 비친 어떤 물체....저건 또 뭘까?

이렇게 표지에서부터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휘어잡은 <시간상자>.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이 물건 채집과 관찰에 취미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이 속표지가 암시하고 있다.




부모님과 바닷가에 놀러온 소년은 소라게와 게를 관찰하던 중 파도로 인해 백사장에 밀려온 수중카메라를 발견한다.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수중카메라, 필름까지 들어있다. 어떤 사진이 찍힌 필름일까...궁금한 마음에 현상소에서 사진을 찾는다. 그런데!!

아니, 이럴수가!!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무리 중에 괴상한 녀석이 하나 있다. 로봇 물 고기인가?

더 황당한 것은 소파에 앉아있는 문어들!! 포장이사 콘테이너 속에 들어있던 소파며 전등, 탁자, 어항을 가져와서 멋들어진 거실을 꾸몄다. 게다가 큰 문어 한 마리가 책을 들고 있는데 그 앞엔 아기문어들이 모여 있다. 혹시 책을 읽어주는 스토리 타임?

거북의 등엔 소라껍질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에 초록색 생명체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는 게 아닌가.





또 비행접시를 타고 단체여행을 온 외계인들의 여러 모습들. 물고기를 막대기로 찌르는 외계인 장난꾸러기와 아차 하는 순간에 카메라를 떨어뜨린 외계인까지 하는 행동은 지구인과 똑같다.


그리고 불가사리섬! 옆에 있는 불가사리섬과 서로 손짓하면서 어딘가로 가는데 혹시나 지나가는 고래를 밟을까봐 조심조심...


하지만 소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바로 단 한 장의 사진!



마치 거울을 들고 거울을 쳐다보는 것처럼 사진 속에 아이가 있고, 그 속에 또 다른 아이...소년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현미경을 가져오고 10배, 25배, 40배, 55배, 70배 확대하고 그 카메라로 제일 처음 사진을 찍은 소년을 보게 된다.

사진 한 장 속에서 과거의 모습을 들여다본 소년은 자신의 모습을 찍고 카메라를 바다로 던진다.




바다에 던져진 카메라는 오징어와 커다란 물고기, 해마에 의해 운반되다가 바다밑으로 가라앉는데 거기에 펼쳐진 건 다름아닌 인어마을이다. 기둥처럼 늘어서 있는 말미잘 사이엔 가로등이 있고 아파트처럼 보이는 산호초엔 불이 켜져 있는 등 도시의 밤풍경과 똑같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떠오른 카메라는 돌고래와 파도에 실려 남극을 지나 어느 해안가에 이른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점의 변화에 따른 시간의 변화다. 처음 소년의 눈으로 본 현재의 시간에서 카메라의 시선으로 본 사진 속에 펼쳐진 과거의 모습, 다시 바다로 돌아간 카메라를 바다 속 생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재진행이자 미래의 모습...은 단순히 놀라운 수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특히 이 책 <시간 상자>는 올해 칼데콧 상을 받았는데 책 속에 펼쳐진 상상력은 그림책을 보는 나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곳곳에 숨겨진 여러 장치로 인해 글 없는 그림책임에도 전혀 밋밋하지 않았다. 오히려 글이 없는 점을 100% 살려서 그림책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한 삽화나 일러스트가 아니라 글로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마디로 그림책이 작은 미술관인 셈이다. 프랑스 그림책 편집자인 크리스티앙 브뤼엘은 이렇게 말했다.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를 포함한 이미지들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과 그림 사이를 읽는다는 것이다. "

출간하는 책마다 자신의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데이비드 위즈너! 이쯤되면 도대체 그의 머릿속은 어떤 구조로 생겼는지 궁금해진다. 또 다음에 그가 어떤 세계를 우리 앞에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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