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황토빛 표지, 양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사람의 형상... 뭘 하는 모습일까.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제목을 보니 이건 춤추는 모양인가본데... 참으로 기괴하다. 표지그림이나 제목이...


기괴한 건 그뿐이 아니다. 보통의 책이면 당연히 있을 차례도 없이 바로 시작된 첫 부분엔 (무덤 훼손 사건 발생)이란 신문 기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두 장을 넘겨 만난 제일 첫 문장, “내가 미친 게 틀림없다.”


어허, 무슨 사연이 있길래 처음부터 자신을 미쳤다고 하는걸까...하는 궁금증에 조금 더 읽어 내려가니 이제는 아예 엄포를 놓는다. “그가 주검이 되기 전에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가 어떻게 해서 주검이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덮는 편이 좋다. 지금 바로.”


이쯤되면 독자는 오기가 발동한다. 도대체 니가 무슨 얘길 하려고 어떤 대단한 비밀이 있길래 처음부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이냐...오냐, 한번 끝까지 읽어봐주마!!...하고.


이렇게 처음부터 잔뜩 궁금증에 호기심, 오기가 뒤범벅된 체로 읽기 시작한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이 책은 열 여섯 살인 핼의 우정과 사랑, 절망에 관한 얘기다. 아니, 사랑이란 단어가 적절하지 않은건가...동성간의 사랑이니..


핼은 친구의 요트를 타고 바다를 나갔다가 높은 파도에 요트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면서 배리를 만난다. 배리야말로 그동안 자신이 찾던 ‘마법의 콩’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긴 핼은 배리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7주 동안 그야말로 꼭 붙어다니던 둘은 한 명의 여자가 둘 사이에 등장하면서 크게 다투고 배리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핼은 배리와 했던 약속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너랑 계약을 하나 해야겠어”

“좋아”.....

“우리 중에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이 그 사람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거야.”-223쪽


이런 내용들이 핼의 자기 고백적인 성격을 띤 이 책은 중간 중간에 여섯 개의 현장보고서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 부분 역시 독특하다. 갱지에 수동식 타자기의 필체로 쓴 부분이 사회사업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그게 마치 직접 현장보고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본문 내용 중에  ‘즉시 재생’이라든가 ‘수정’이라고 적은 부분이 있는데 이게 재밌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도중에 커서가 뒤로 후퇴해서 썼던 글을 사사삭 지우고 다시 적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핼이 배리의 시체를 확인하러 가는 상황을 마치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하게 표현한 대목이나 핼과 배리가 오토바이 무리와 싸움하는 광경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바로 반젤리스의 ‘Heaven and Hell'이란 음악이 이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줄곧 귓가에 맴돌았다는 것이다.


왜일까. 주인공의 이름이 핼이어서? 심하게 다툰 두 사람에게 화해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몰아붙이는...그로 인해 남겨지는 사람은 지옥이나 다를바 없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작가의 암시에 걸려든 셈인가.


소설의 본문 중에서 핼이 오즈본 선생님께 작문 숙제로 제출한 내용이 죽음과 시간에 관한 것이듯 죽음이란 관념에 대해 유난히 집착하던 핼이 사랑하던 배리의 죽음으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었을지 알 수 없다. 핼조차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으니까. 자신의 과제 제목처럼 <시간은 지속된다>는 것인가.


이것은 더 이상 현재의 내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온 것들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가지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37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