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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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오늘은 30마리쯤 낳았네.”

  큰아이가 4살 무렵부터 열대어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감성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처음엔 기르는데 재미를 붙이지 못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불이 붙어버렸다. 바로 구피란 열대어가 새끼 낳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부터! 겨우 5센티미터도 안되는 물고기가 새끼를 낳으려고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쬐끄만 알 같은 구피치어를 낳는데...지켜보고 있자니 감동 그 자체였다. 몸값 이래봐야 3마리에 겨우 2천원, 6천원어치 구입하니 덤으로 한 마리 더 받아서 10마리를 구입했었는데 그게 그런 쏠쏠한 기쁨을 가져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 후부터는 25일~30일 주기의 구피 임신기간을 계산해서 구피 치어를 받았다.

  하지만 그당시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생물학을 전공한 나조차 새끼를 낳는 건 엄연히 포유류만이 가지는 특징이자 특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나이롱 생물학도였던 나의 무식이 탄로나는 순간이었다.

 

 최재천님의 신간 <인간과 동물>에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TV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책으로 꾸몄다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던 게 무척 아쉬웠다. 괜히 텔레비전을 치워버렸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상천외하고 재밌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닭이 달걀을 낳는다고 생각하는데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오히려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닭을 매개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꿀벌들의 춤은 단순한 춤이 아니라 춤언어라고 한다.

<적어도 몇 시간 전에 벌어졌던 일, 그것도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어났거나 행했단 일을 기억해두었다가 그것을 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부호로 전달할 수 있어야 언어라고 할 수 있지요. 벌들은 그것을 합니다.> 153쪽.

 

  그리고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그것엔 새들이 자기 새끼들을 전체 모습을 보고 구별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에 돌아오면 모든 새끼 새들은 죄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실제로 어미가 보는 건 새끼 새의 벌린 입뿐이라는 것. 그래서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새들은 들키지 않도록 입 안의 모습을 의붓부모의 새끼들과 닮도록 철저히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람이 소를 기르는 것은 공생의 일종이라는 것과 새끼 거위가 알껍질을 깨고 나와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을 엄마라고 여기는 과정을 각인이라고 하는데 이때 새끼 거위는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인식하는데 그게 노란 장화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무척 재밌는 부분도 많은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개미들 가운데 머리가 특이하게 생긴 개미가 있습니다. 보통 개미들은 머리가 동그랗고 도톰한데 머리가 편평하게 태어나는 개미가 있습니다. 이 개미의 역할은 개미굴 문을 막고 보초를 서는 겁니다. 소위 문지기개미인데 문이 좀 클 경우에는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148쪽.

  상상이 되시는지...자신의 머리로 집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문지기개미의 모습이...난 이 부분을 읽을때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균이 우리 몸에서 내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설명된 부분에선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열이 난다고 무턱대고 해열제를 먹는 것이 오히려 병원균한테 “어서 오십시오”하고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니....섬뜩할 따름이다.

 

  이렇게 동물들이 배우고 서로 도와주고 때로 고도의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일을 벌이기도 하는 과정들이 사진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다. 거기다 최재천님의 간단하고 알기 쉬운 문장은 책읽기에 속도를 더해준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이 우리에게 강조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연계, 특히 생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절대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오직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착각 속에 살아왔는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게 됐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긴 고리 중 어느 한 부분에 속하는 진화의 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기가 막히게 우수한 두뇌를 지녀 만물의 영장이 된 우리지만 사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일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20여만 년전에 지구촌의 가장 막둥이로 태어난 동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보다 수천만 년 또는 수억 년 먼저 태어나 살면서 온갖 문제들에 부딪쳐온 다른 선배들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일은 지극히 가치있는 일일 겁니다> 9쪽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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