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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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 읽은 책 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 보라고 하면 겨우 단행본 두 세권과 장편 하나가 기억날 뿐이다. 내가 하는 공부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였고 독서가 내 삶에 크게 도움도 안되는 듯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하는 공부나 좀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나을 듯 해서였다.

요즘 집에서 며칠 쉬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모색하고 있다. 세 권 정도의 책을 일고 난 다음 만난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출판사 편집장들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책인데 읽어보니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처음부터 순서적으로 차근차근 읽어 나갔는데 두번째 대담부터 나도모르게 노트를 꺼내어 메모를 하게 되었다. 좋은 문장이나 책을 읽어 가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하는 습관은 고등학교 때부터 생겨났고 대학 때 한 창 책을 읽을 때에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도 많이 하고 그랬다. 제작년과 작년에 도올이 TV강의를 할 때도 방송을 보면서 노트를 정리하였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토론을 하게되면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이 독자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해주고 길을 모색하게 하는데 매우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세 명이나 네다섯명이 하는 토론은 보다 넓게 생각을 모을 수 있고 다양하게 문제를 인식할 수 있어서 좋은데 이렇게 단 둘이서 하는 것은 좀더 깊이있는 대화가 가능해서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두 명이서 하면 아무래도 인간적 유대의식 때문에 심하게 논쟁을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이 대담집의 최대 특징이자 약점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내가 평소에 품고 있는 생각을 대담자의 입을 통해 확인한 것이 많아서 매우 좋았고 또 어떤 것은 내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식견이어서 큰 자극이 되기도 했다.

이강숙과 김병종의 대담에서는 김병종의 사진만 주로 실어 옥의 티가 됐고 함인희와 이숙경의 대담은 가장 실패작이라고 본다. 대담을 위해 준비한 성의가 없는 건지 아니면 평소의 식견이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김춘수와 이승훈의 대담도 그들이 오늘 한국시의 주요흐름을 망라한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얘기가 지나치게 편협된 감이 있다. 이윤기와 이다희의 대담에서는 이다희말고 다른 사람을 구해서 토론 형식이 됐으면 했다. 김우창과 김상환의 대담에서는 김우창이 원래 좀 어려운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그의 생각이 독자에게 전달이나 제대로 되는지 모르겠다. 미리 주선자가 약간 쉽고 분명하게 해 줄 것을 부탁하는게 어땠을지.

김화영과 이문열, 조유식과 노동환,최장집과 강유원 등의 대담이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가 있었다. 그 밖의 대담들도 매우 흥미로웠고 군데 군데 보석같은 말들은 너무도 많다. 이 책을 어제 손을 대 오늘 아침에 끝장을 보게 되었는데 예쁜 여자가 불러낸다 해도 별로 내키지 않을 정도의 흥미가 있었다.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좀 마시고 나면 세상에 대해 좀 건방진(?) 배짱이 생기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뭔가 지식의 포만감이 온다.자기 삶의 위치를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한번 돌아보고 차분히 길을 모색하려는 사람들은 좀 아쉬운대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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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3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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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박연암 선생이 말한 '옛 것을 본받되 변통할 줄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되 근거가 있어야 한다(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책이다. 역사적인 사료와 현지 조사, 전문가의 의견,과학적 방법을 동원한 분석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억측이나 일방적 주장이 배제되어 있다. 학술 논문이나 평면적 서술로 된 딱딱하고 지루한 책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재미를 최대한 맛보면서도 구체적인 지식을 실속있게 습득해 주고 지속적 흥미를 유발시켜 준다.

KBS에서 다루어 호평을 받았지만 책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이다. 방송이 보고 듣는 현장감과 생동감있는 재미를 준다면 책은 자기 나름대로 사유하며 읽는 재미라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 3권에서는 고지도를 통한 역사 읽기와 여성에 대한 관심도 눈여겨 볼만하다. 말하자면 역사의 사각지대에 놓인 부분들이 여기서는 흥미롭게 살아나고 있다는 것인데 그 내용이 매우 실속이 있어 알차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읽는 과정에서 알게 될 것이다. 확실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 같다. 그리고 똑 같은 사실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가에 따라 다르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 만큼 느끼는 것 같다.

어제 이 책을 선물받아 한 편식 골라보다가 어느덧 다 보게 되었다. 역사스페셜은 1,2권도 재미있지만 3권이 더욱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여러가지로 자극을 받고 생각할게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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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 후집
성백효 옮김 / 전통문화연구회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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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문학이라고 하면 시,소설,희곡,수필,평론 이런 식으로 일반적으로 분류를 한다. 신춘문예 응모작이나 문예지의 응모 요령을 보아도 창작현장에서 통용되는 장르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할까?
수필?

국문학의 장르 구분에서 장덕순 선생은 서정, 서사, 희곡으로 분류를 하였고 조동일은 서정, 교술, 서사, 희곡으로 분류를 하였다. 그리고 김흥규는 서정, 서사, 희곡, 교술, 중간 혼합적 갈래로 분류하였다. 3분류 설에서 5분류설로 전개해 온 셈인데 이런 분류의 어려움은 가사나 경기체가 그리고 다양한 양식의 한문학 작품들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학의 장르 구분은 편의상의 시도이지 각 개별 문학 작품이 그 틀에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언어에서 문법적 규칙에 따라 모든 언어가 그 규칙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대개 지속성과 유기성을 갖는 것은 분류되기 어려운 특징을 갖는다.

중국에는 <고문관지>가 주로 읽히고 있는데 우리가 대하는 <상설고문진보대전>과 겹치는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는 고문진보는 사라진 듯하다. 일본에도 고문진보가 있지만 분량이 우리의 것과 비교해서 현저히 적은데 그대로 번역해 나온 것도 있다.

고문이라는 말은 단순히 '옛 글'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당송때 한유, 유종원 등이 사륙병려문의 기교나 형식을 반대하여 고문부흥운동을 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문학 용어이다. 대체로 이 고문가들 중에는 한류구소라고 해서 한유 ,유종원 구양수,소식등이 대가로 꼽히는데 이들의 작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도련 선생이 쓴 <한국 고문의 원류와 성격> 그리고 그의 문생 등이 쓴 <한국 고문이 이론과 전개>에 잘 언급 되어 있다. 이 고문은 조선조의 문장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고문진보를 몇 분 선생님들께 차례로 배워 보았다. 처음에 이 책에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내가 전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형식이라는 것과 한 편 한 편이 그야말로 명문이라는 정도의 감상 수준이었다. 그런데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문진보 수업을 위해 착실히(?) 예습 복습을 하다가 거의 끝무렵에 이르른 어느날 횡단보도를 건너가다가 앞에서 배운 한 편 한 편의 글이 염주에 구슬이 꿰이듯 꿰지고 거기에 어떤 관통하는 정신이 흐름을 느끼는 체험을 하고 나서 비로소 이 책의 위대함을 알았다. 우리 문학에서 載道文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문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폄하를 받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나의 기대를 확인시켜준 경험이었다.

또 언젠가 서예를 하는 어떤 분을 위해 이 책에서 좋은 구절을 뽑아 본적이 있는데 물반 고기반이었다.

고문진보가 번역되어 나온 것은 여러 종 있다. 그 중 명문당의 번역과 이 책이 다른 점은 명문당은 자세한 주석과 색인이 돋보인다는 것이고 이 책은 구두의 정확성과 오역이 없으며 읽기에 편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다른 번역본과 가장 큰 차이점은 고문진보 원전에 보면 각 글마다 앞에 迂齋 가 쓴 그 글에 대한 평론이 있는데 여기에도 현토를 하고 번역을 했다는 점이다. 문학을 연구하거나 창작을 하는 사람은 이 글을 잘 분석하면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문진보를 강의하는 사람들도 글 내용만 가르치지 그 문예 예술미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또 책 마지막 부분에 문장궤범이 붙어 있다. 이것은 원래 고문진보 전집에 붙어 있는 것인데 글 성격상 후집에 제 자리를 찾아 번역해 놓은 것이다. 이것도 이 책만의 특징이다.

다만 주석과 감상이 없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아래에 단어가 있고 번역이 있으니 아쉬운 대로 해 볼만은 하나, 어디가서 강의를 한번 쯤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자기만의 자득의 길로 가야 좋다고 본다. 표지는 요즘 감각으론 좀 촌스럽다. 요컨대 이 책은 한문 전공자나 문학연구생과 창작인,서예인은 말 할 것도 없고 기타 교양인도 한 번쯤 정독을 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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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정해
임창순 지음 / 소나무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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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송사,원곡,명소설이라고 부를 정도로 당나라 시대에는 시가 융성하였다. 한국 한시의 원류도 대개 이 당시의 영향을 입었는데 오칠당음이나 두율 은 모두 당대의 것이고 고문진보 전집 역시 당시대가 주류이다. 이런 책들은 선비들의 필수 교양이었고 이순신 장군도 두율을 인진란 전에 배운 바 있어 장군의 문투에 많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서구 시를 번역하여 소개한 김억은 한시 번역에도 조예가 깊었고 그의 제자 김소월은 고문진보를 외다시피했다고 한다. 김소월의 시를 잘 보면 한 시의 영향을 느낄 수 있고 이육사 역시 시정신이 한시교양과 맥을 같이한다.

국내에서 나온 당시에 대한 번역서는 더러 있다. 당시 삼백수는 중문과 교재로 쓰이는데 계명대에서 번역이 되어 나왔고 불교학자 이원섭의 당시는 시의 맛을 살린 번역으로 유명하고 또 작년에는 서울대 교수휴게실인 자하연에서 펴낸 책 두 권이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당시전집도 있고 다양한 해설서도 있다.

오늘 감히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소나무에서 나온 靑冥 任昌淳 선생님의 唐詩精解이다. 선생은 1999년 가을에 작고 하셨는데 우리 나라 한학의 대가이셨다. 중국 비림에 갔을 때는 많은 중국인 학자들이 선생을 따라다니며 선생의 평에 귀를 기울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금석학에도 대가이시고 글씨 그림에 다 능하시고 바둑을 좋아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생전에 한 번 뵙고 싶었는데 뵙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는다. 내가 다니는 연구실에 선생의 초서 글씨 한점이 걸려 있다.

선생은 교수시험을 통과하여 성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추진회에서도 제자들을 가르쳤고 만년에는 지곡서당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지금 전국의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는 이가 많다.

이 책은 1956년에 이미 출판된 것을 선생이 작고하시던 해 봄에 펴낸 책이다. 읽어보면 한글자 한글자에 정성을 쏟았고 허튼 말씀이 없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다만 당시는 형식을 많이 따져서 평측과 압운,댓구 등 형식에 대한 교양이 필수인데 그기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 아쉬운데..이것은 아마도 요즘 사람들이 전공자라 하더라도 그런 형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또 직접 한시를 많이 짓지 않는 현실적인 분위기를 감안하여 그렇게 한 듯 하다.

우선 좋은 시를 안목있게 정선하였다. 원시를 왼쪽에 배치하고 번역을 오른쪽에 배치히여 대조해 가며 읽도록 하였고 <자구>에서는해설이 필요한 낱말을 정갈하게 풀이하였다. < 통석>란에서는 시를 해석하여 번역에서 이해가 잘 안되는 점을 보완하고 <감상>에서는그 시에 대한 감상을 절제있고 해 놓았다. 중간 중간 운치있는 그림이 있고 해서 매우 사랑스러운 책이 되었다. 또 뒤에는 시제목, 시인 ,자구 색인을 두어 실용성을 높였다.

선생은 서문에서 ' 해석을 읽어서 뜻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마음으로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뽑아서 입에 무르녹을 정도로 몇십번 내지 몇 백번이라도 반복해서 읽어서 암송할 정도에까지 이르면 그 시의 진미를 저절로 알 것이요, 해석에 나오는 시에 대한 용어도 정확히 이해될 것이다.' 라고 했다. 시의 진미를 맛보려면 깊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唐詩의 형식미와 문예 예술미를 현대시창작 현장과 접목시켜보고 싶은 생각이 늘 있으나 그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한두 사람 떠오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을 만나 배우기도 하고 우의를 다지기도 하면 오죽 좋으랴.

하여튼 이 책은 시를 읽고 쓰거나 한학을 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많은 교양인이 두루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감히 거듭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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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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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3년간 공부만 죽자 하다가 내 생애에 드문 타락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침 6시 안팎에 일어나서 밤 11시 정도에 잘 때까지 매우 규칙적인 공부를 지속해왔다. 일년간 만나는 사람도 극히 제한 적이고 텔레비 프로도 일주일에 한 두개를 보는데 불과하였다.

그러다가 최근 인간에 대한 환멸과 회의가 생겨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 틀어 박혀 비디오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시를 쓰거나, 일기를 쓰거나 한다. 일기쓰기와 독서한 것 기록하기는 오래된 나의 습관이어서 이제는 밥먹는 것 처럼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지금 네다섯권 책을 주문해서 읽고 있는 중인데 또 읽고 싶은 책이 발견되어 알라딘에 신청을 하다가 <서평쓰기>라는 매우 구미에 당기는 코너를 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임진왜란시 의병의 활동에 대해 고무받은 나는 작년에 좀 소상하게 관련 논문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이순신을 모함한 건 원균이 아니고 원균이 칠전량 해전에서 패한 것은 권율의 강압적인 출정 명령 때문이었음을 알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게 된 것은 신문지상에서 하도 요란하게 선전을 해대고 내가 인정하는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심사하면서 한마디씩 한 말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나와 멜을 주고 받던 아가씨가 (감동의 물결)이라는 표현을 쓰서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사적인 사실을 작가와 함께 확인하고 나의 허무와 환멸을 이순신을 통해 느낄수 있어 매우 흥미있게 쉬지 않고 읽게 되었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을 다루는 소설은 역사로서는 다룰 수 없는, 그렇지만 진실인 세계를 다루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걸 느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난중일기와 충무공 전서 등 관련 자료를 많이 수집하여 읽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서사의 골격은 정유재란인데 임진란때의 한산 대첩이나 당포,당항포 해전 등을 중간에 회상 형식으로 충분히 삽입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좀 뜻밖이다.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이순신의 내면 심리의 변화 과정이 조정과 임금의 처우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좀 더 분명해졌을 텐데..그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쟁을 치르는 것 이외의 배를 만든다든가 순찰을 한다든가 장계를 올린다든가 등 소홀하기 쉬운 역사의 순간을 잘 그려내어 주었고 아까 말한 원균의 이야기처럼 의도적으로(?) 숨겨진 부분을 솔직히 드러내 주었다. 작자는 무인 이 순신의 내면 세계를 절제된 언어로, 그렇지만 세밀하게 그려내 주었다.

이순신이 부딪친 여러 형태의 적과 회의에서 허무로 이어지는 심정이 잘 묘사되어 공감이 왔다. 그러나 여진과의 관계는 지나치게 강조한 느낌이 있어 오히려 소설의 중심 가닥을 흔들어 놓고 있고 소설 마지막 부분에 강한 무게가 실리지 않은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일고 오래간만에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 앉아 상념에 젖어들 수 있었다. 내가 소설책을 사는 기준은 최소 두 번은 읽고 싶은 책이어야 하는데 이 책 역시 다음에 한 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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