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평전 -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윤덕한 지음 / 중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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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시대와 관련된 책을 이것저것 보다가 이완용이라는 인물에 많은 궁금증이 생기던 차에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한 인물에 대한 인간됨과  행위의 진실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고 그 인물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정리한 이완용이라는 인물은 시류를 거스르지 않고 명민하게 적응해 나가는데 그러한 행위가 상당한 품위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육신 같은 '무모한' 절개도 없으며 여말 낙향한 선비들처럼 벼슬을 초개같이 버리는 맑은 정신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드러나는 비굴한 처신을 하는 것도 아닌, 말하자면 요즘 세상에 어느 정도 잘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시류를 거스르지 않고 적당히 돈 받고 적당히 주고 그런 사람들....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수백 수천, 아니 수만, 어쩌면 그 보다 더 많은 무수한 이왕용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깊은 침묵에 잠겼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 할 수 있으려면 자신부터 올곧고 깨끗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어디 그리 많은가....아득하고 아득하다.
민비를 죽인 것은 결국 흥선대원군이고  을사 조약의 가장 큰 죄인은 다름아닌 고종 자신이라는 지적은 상당부분 수긍이 가는 말이다. 자신이 직접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제공한다든지 그 결과를 이용한다든지 하는 경우, 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해야 할 시점에서 남에게  미룬다거나 침묵하는 행위는 공자의 춘추 필법에 미루어 보면 필시 그 죄를 받아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완용이 천하의 명필이고 했는데, 을사 조약에 반대하고 벼슬을 사직하던지 아니면, 낙향했으면 오늘날과 같은 비난은 없으련만...그 개인의 재능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고려가 망할 때는 두문동 72현이라도 있건만 조선이 망할 때 선비들은 다 어디에 있었는지...무엇보다 소위 황족이라는 사람들이 친일파 아닌 사람이 없었으니...이런 왕조가 왜 진작 망하지 않고 그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여 죄없는 백성들에게만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한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책을 기회로 앞으로 역적이나 역사의 패자 등 다양한 형태의 평전이 나와서 역사를 좀 더 깊이 있게 보고 그를 통해 우리들 삶의 복잡한 다단을 비추는 한편 바른 삶의 모습까지 아울러 비춰주는 거울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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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열화당 미술책방 23
오주석 지음 / 열화당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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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 선생을 내가 알게 된 것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통해서였다. 간송 미술관에 가끔 전시를 보러 가곤 했던 내가 2000년 여름에 이쪽 방면 전공자의 소개를 받은 책인데, 그 때 메모를 해 두었다가 얼마전에서야 여유가 생겨 읽은 책이다. 왜 그 책을 그 때 읽고 그 사람과 토론하지 못했을까, 깊은 후회가 생긴다.

그 책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오주석 선생이 인상 깊이 남았다. 그래서 즉시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한국의 미 특강>과 이 책을 사 들고 갔다. <한국의 미 특강>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다음에 씌어진 책이어서 그런지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침 내가 읽은 책의 순서대로 김홍도에 대해 점점 비중있게 다루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 책에 많은 기대를 안고 책을 펴들며 ' 김홍도 흐흐 ' 하는 기분으로 눈을 빛내며 충분히 책에 몰입할 자세를 가졌다. 그러나 나의 흥미는 차츰 떨어지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인내가 필요한 줄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책의 삼분의 이 정도가 지나면서 나의 인내는 바닥을 드러내고 저자의 서술 태도에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뒷부분은 건성으로 보고 '마무리'를 읽고 나서 이 책에 대한 몇 가지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우선 나는 우리나라의 많은 논문들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우선 글의 전개가 아주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뭐 논문이란 게 재미있는 것이냐?'라고 반문을 제기하겠지만 나는 ' 잘 된 논문은 아주 흥미롭고도 재미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전에 이우성이나 임형택 선생의 논문을 본적이 있는데 글이 아주 논리적이고 정교해서 내용도 그렇지만 우선 문장이 읽을 맛이 났는데, 논문에도 이런 깊은 문장의 묘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 적이 있다. 우선 글이 군더더기 없이 논리적이고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고 정교해 지려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몸 깊이 체화해야 가능하다. 그럴 때, 비로소 주석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많은 참고 문헌을 이용하였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내용을 완전히 체화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참고문헌이 그만큼 많은 것이야말로 그 글에 대해 생소하다는 반증이 될 지도.

또 하나는 글의 구성상 문제가 있다. '김홍도라는 사람' 항목을 굳이 설정할 필요가 없이 '편년으로 본 김홍도의 생애'와 함께 합쳐 서술해야 보다 단순하고 명확하며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나누는 바람에 책 내용이 산만해졌다. 김홍도의 연보가 비교적 상세하므로 당연히 편년으로 구성하고 불분명한 것은 주석으로 처리하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석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이런 글은 미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각주로 달아 궁금한 사항을 그 때 그 때 확인하고 넘어가게 배려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상정하는 일반 독자라는 것도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사람이므로 이 글을 읽어내자면 오히려 주석이 있어야 편할 것이기에. 머리 한번 끄덕이면 될 것을 뒷 페이지를 다시 확인해야하는 것은 아주 번거로운 일이어서 독서 속도를 떨어뜨리고 글 흐름을 단절하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인용 시와 문장에 있어 어떤 것은 원문을 제시하고 어떤 것은 생략하고 그랬는데 이정도의 무게 있는 책에서는 원문을 다 제시하는 것이 옳다고 사려된다. 요즘 저자들이 '대중' '대중' 하며 독자의 수준을 아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자신들이 글을 시원 찮게 써서 그렇지 글만 잘 쓰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책 값이 너무 높게 책정되었다. 이 정도 책이면 만 오천원 정도면 충분할 것을 2만 2천원이라니 지나치게 높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나의 기대에 못미쳤지만 나는 이 저자가 앞으로 몇 배는 더 훌륭한 글을 우리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나에게 남긴 인상은 깊은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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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꿈
유봉학 지음 / 신구문화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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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조에 대해서 대략적인 지식이나마 얻어 가려던 생각이 있던 자에 며칠전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일반 교양서로 쓰여졌긴 했지만 약간의 의무감이나 목적의식이 없이는 참고 읽어 내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많이 다듬어지긴 했지만 논문투의 문장이 글을 건조하고 지루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내용에 대해 그 사실을 뒷받침할 근거를 자세히 제시하거나 또 특별히 주석도 달지 않은 책이므로 본격 학술 서적이라기 보다는 일반 교양으로 씌어진 책인데 , 이런 책일수록 끝까지 재미있게 읽도록 자신의 감정과 느낌도 적절히 드러내고 에피소드 등을 이용해서 글에 생동감을 불러일으켰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 3장의 3. 문화예술의 전개 양상과 성격에서 풍속화를 통해 시대상의 변화를 더듬어 본 글은 퍽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부록으로 실은 천릉지문이 가장 유익했다. 정조실록에 실린 부록보다 많이 다듬어져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왕의 행장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정조실록을 보고 정순왕후와 혜경궁이 내린 행장과 기타 시책문과 애책문도 보고 또 이만수가 쓴 행장도 지금 읽고 있으니 큰 도움을 얻은 셈이다.

한 책을 읽어보면 그 다음 읽어야 할 책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준다는 사실도 새로 환기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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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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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안동지역 답사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청천에 있는 우암의 묘소에 들렀다. 평소 우암에 대한 평가가 노론과 남인에 따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른 책을 주문하다가 우연히 구입하였는데 몇 줄 읽노라니 다른 바쁜일도 내 몰라라 하고 밤을 세워서 한 이틀 걸려 다 읽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읽게 된 데에는 내가 당쟁사에 대해 관심이 부쩍 는 탓도 있지만 이덕일 선생이 아주 글을 잘 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체화시켜 짜임새 있고 흥미롭게 잘 전달해 준다.

이 책을 보면 송시열은 주자의 성리학을 무기로 하여 왕을 위협하고 반대론자들을 탄압한다. 왕을 위협하였다는 것은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자신의 문인들을 배후 조종하여 정치를 요리한 것이고 반대론자들을 탄압하였다는 것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고 허적을 죽인 일 등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송시열은 북벌론자가 아니라 북벌을 한사코 반대한 인물이며 덕이 어우러진 선비가 아니라 음험한 한 정략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평전이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이 책은 송시열의 정략적 면묘에 주로 포인트가 맞추어져 있다. 송시열의 학문에 대해서 좀더 깊은 파악이 있어야 그의 행동에 대한 동기 및 인간성, 그리고 행위의 진위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결론이 좀 약한 것이 이 책의 흠이다. 결론부분에서 이 책의 내용을 다 아우르는 무언가의 비젼 제시라든가 감동적 서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다.

이덕일의 다른 책을 더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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