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최근 3년간 공부만 죽자 하다가 내 생애에 드문 타락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침 6시 안팎에 일어나서 밤 11시 정도에 잘 때까지 매우 규칙적인 공부를 지속해왔다. 일년간 만나는 사람도 극히 제한 적이고 텔레비 프로도 일주일에 한 두개를 보는데 불과하였다.

그러다가 최근 인간에 대한 환멸과 회의가 생겨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 틀어 박혀 비디오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시를 쓰거나, 일기를 쓰거나 한다. 일기쓰기와 독서한 것 기록하기는 오래된 나의 습관이어서 이제는 밥먹는 것 처럼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지금 네다섯권 책을 주문해서 읽고 있는 중인데 또 읽고 싶은 책이 발견되어 알라딘에 신청을 하다가 <서평쓰기>라는 매우 구미에 당기는 코너를 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임진왜란시 의병의 활동에 대해 고무받은 나는 작년에 좀 소상하게 관련 논문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이순신을 모함한 건 원균이 아니고 원균이 칠전량 해전에서 패한 것은 권율의 강압적인 출정 명령 때문이었음을 알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게 된 것은 신문지상에서 하도 요란하게 선전을 해대고 내가 인정하는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심사하면서 한마디씩 한 말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나와 멜을 주고 받던 아가씨가 (감동의 물결)이라는 표현을 쓰서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사적인 사실을 작가와 함께 확인하고 나의 허무와 환멸을 이순신을 통해 느낄수 있어 매우 흥미있게 쉬지 않고 읽게 되었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을 다루는 소설은 역사로서는 다룰 수 없는, 그렇지만 진실인 세계를 다루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걸 느꼈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난중일기와 충무공 전서 등 관련 자료를 많이 수집하여 읽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서사의 골격은 정유재란인데 임진란때의 한산 대첩이나 당포,당항포 해전 등을 중간에 회상 형식으로 충분히 삽입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좀 뜻밖이다.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이순신의 내면 심리의 변화 과정이 조정과 임금의 처우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좀 더 분명해졌을 텐데..그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쟁을 치르는 것 이외의 배를 만든다든가 순찰을 한다든가 장계를 올린다든가 등 소홀하기 쉬운 역사의 순간을 잘 그려내어 주었고 아까 말한 원균의 이야기처럼 의도적으로(?) 숨겨진 부분을 솔직히 드러내 주었다. 작자는 무인 이 순신의 내면 세계를 절제된 언어로, 그렇지만 세밀하게 그려내 주었다.

이순신이 부딪친 여러 형태의 적과 회의에서 허무로 이어지는 심정이 잘 묘사되어 공감이 왔다. 그러나 여진과의 관계는 지나치게 강조한 느낌이 있어 오히려 소설의 중심 가닥을 흔들어 놓고 있고 소설 마지막 부분에 강한 무게가 실리지 않은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일고 오래간만에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 앉아 상념에 젖어들 수 있었다. 내가 소설책을 사는 기준은 최소 두 번은 읽고 싶은 책이어야 하는데 이 책 역시 다음에 한 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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