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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1월
평점 :
오늘날 사회 전반적으로 볼때 돈을 많이 가진 부자들이나 정치인 법조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존경을 받고 있다기 보다는 극심한 경멸과 냉소를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나라 발전을 위해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의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욕을 듣는 사람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대로 욕을 할 만큼 도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지 않으니 바로 이점이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 전반의 가치 혼란과 도덕 붕괴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고 본다.
얘기를 약간 바꾸어서 오늘에 계승되고 있는 민족 문화 내지는 전통 문화라는 것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탈춤이나 농악 등 서민 층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 선비 문화, 내지는 양반문화라 표현할 수 있는 전 시대의 주류적인 문화는 거의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들의 문화가 주로 문자기록 문화로 되어 있어 한문이라고 하는 언어의 장벽에 막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를 망하게 한 대상자로 인식되고 좌익 측의 이념적 공세에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서구화라는 이름으로 붕괴되고 78십년대에는 또 민중론이 풍미하여 의도적으로 외면 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그들의 문화도 공과 실을 정당히 평가 받을 수 있는 균형감 있고 안정감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부도덕한 졸부의 시대가 가고 제대로 된 상류층이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건전한 상류층 형성에 대한 측면과 민족문화의 유지 전승, 발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모티브를 제공해 줄 책이라고 나는 의미를 부여해 본다.
90년대 초반에 김종록이 소설 풍수를 통해서 그리고 최창조 교수가 풍수 이론을 통해서 우리 사회 일각에 상당한 풍수 붐을 일으켰고 지금은 영남대에 풍수학과까지 설치되었으니 이제 제도권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인데, 이 책의 저자 역시 15년간에 걸쳐 한·중·일 삼국의 600여개 사찰과 암자를 현장답사하고 재야에서 활동하는 기인, 달사들과 교류를 하였다고 소개한 것처럼 풍수에 대하여 오랬동안 내공을 쌓아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상당한 지면을 풍수에 대한 얘기로 할애 하고 있는데.. 이점이 이책의 또다른 특징이다. 보는 이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흠이 될 수도 있겠는데, 나는 내용은 좋지만 책의 전체 주제와 흐름상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하여 비중이 커지는 바람에 배보다 배곱이 커진게 아닌가 한다. 좀 압축적으로 살짝 곁들이는 형식이면 무난했을 법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이 로마를 천년이나 가게 해 주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 다룬 명문가에는 그 점이 돋보인다. 경주의 최부잣집은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고 근처 백리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전하여 실천되었고 안동의 학봉 김성일 종택에서는 수없이 많은 독립 투사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13대 종손 김용환은 파락호로 행세하면서 독립자금으로 전재산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외동딸의 농을 해 오라고 사돈집에서 준 돈마저 독립 자금으로 쓴 것을 소개한 일화에서는 참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또 5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한 소치(小痴) 가문이라든가 2만권의 장서를 갖추어 기증한 대구의 남평문씨 가문, 직언으로 금부도사가 세 번이나 체포 하러 찾아 온 의성 김씨 川前 종택, 지조론의 조지훈을 비롯하여 조동일,조동걸,조동원 등을 배출한 경북 영양의 호은 종택 등 모두 열 다섯 명가들의 이야기엔 깊이 새겨볼 대목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접빈객 등으로 식자층과 주위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아 각종 민란이나 육이오 등을 거치면서도 집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흑백으로 실어 놓은 사진들은 여유를 주고 현장 답사와 인터뷰는사실감을 준다. 아이디어도 좋고 자기에게 맞는 책을 적절리 잘 썼다고 본다. 읽다가 피곤해서 좀 쉬려다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어는새 한 이야기를 다 읽고 마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