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가치가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미미님의 글(https://blog.aladin.co.kr/759250108/13338995)이 나의 글(https://blog.aladin.co.kr/hahayo/13333280)에 대한 어떤 말처럼 들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은 아니지만 오독의 여지가 있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737472)

말들이 합리로 가득 차서, 다른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것도 페미니즘 때문이다. 1세계 페미니스트 책들을 읽다가, 마음속에 껄끄러운 감정들-참, 나 우리 엄마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같은-이 '에코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납득이 되었었다.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도시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선진국이 아니라고 해서, 박사학위가 없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시민-도시의 사람이란 의미로-이었던 적 없는 나는, 1세계 여성 페미니즘이 합리성의 언어로 침해하는 무엇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선물,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돈 대신 무언가를 골라서 주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선물을 하는 내 마음은 어쩌면 우월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자신의 선물에 자부심을 가질 때 선물을 받는 사람은 고깝다.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이 고까울 때 그 선물은 이미 선하지 않다. 선물을 줄 때는 내 선물이 보잘 것 없을 수 있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선물을 받을 때는 선물이 귀하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 '이 귀한 걸 알아보지 못하다니 한심하다'고 선물받은 사람을 타박하는 것은 합당한가? 선물받은 사람이 '참, 나 이런 쓸데없는 걸 선물이라고 골랐다니, 참'이라고 선물한 사람을 타박하는 것은 합당한가. 어쩌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태도 뿐이다.  말이라고 다른가.

내가 상대에게 하는 말은 나의 삶들 가운데 발화한 것이고, 풍성한 삶의 다양한 결 가운데 겨우 한 자락이 빈곤한 언어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오해할 소지는 있고, 그건 상대보다 나의 잘못이라는 태도로 다시 말해 볼 수 있다.

내가 듣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삶들 가운데, 그 말들의 결을 열심히 들으려 애쓰고, 알아들을 수도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벌어질 수 있는 오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말하려는 사람이라면 더 열심히 자신의 말에 부족한 부분들을 설명하면서 거리를 좁혀보려고 해야 하고, 듣는 사람이라면 더 열심히 자신이 오해한 부분들을 살피면서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면서 거리를 좁혀보려고 해야 한다. 그 가운데, 다른 삶을 살아온 서로를 아주 조금씩 이해할 수도 있다.

문해력,이란 말은 엘리트주의처럼 들린다. 나도, 내가 좀 더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내 자신이 오해한 말들을 반성하고 노력하지만, 그 말을 내 아이들이 모른다고 해서, 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로 두 번도 세 번도 다시 말한다. 나의 아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방을 '문해력이 떨어지니' 자신과 대화할 상대가 못 된다고 밀어놓기 보다, 저 사람의 삶 가운데 무엇이 이 말들을 이해할 수 없게 했는지 그 사람의 삶의 언어로 다시 한 번 말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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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2-14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쭉 생각하던 문제인데 마침 책에 나와서 쓴 거예요. 마침 별족님이 최근에 저 글을 쓰셨던 관계로 별족님을 향해 썼다고 생각하실까봐 잠시 망설이다 썼어요. 저에게 중요한 발견이었거든요. 저는 제 이전 글(어렵게 쓰여진 글에 관해..)을 제목이 생각안나 찾지못해 링크를 못올렸어요.

근데 발화조차 못하는 생각들이 있더라구요. 침착하게 말해야한다, 논리적이어야한다, 감정적이어선 안된다 등등 이러한 것들이 안그래도 움츠려든 약자들의 발화를 막고 용기내어 의견을 담은 글이 더 이어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요.

‘누구의 말이 이해하기 어렵다‘보다 먼저 필요한건 누구든 어떤 의견이든 자기방식대로 자유롭게 발화시키고 써야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게 부연설명하느라 발화자가 지치고 앞으로의 표현이 위축될 수 있다고요.

예술에서의 표현, 언어에서의 의견표출, 창작에 대해서요.

별족 2022-02-14 10:31   좋아요 3 | URL
우선, 제가 도끼병이었던 걸로. -_-;;;
저도 시끄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요새는 발화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압적이어서(https://blog.aladin.co.kr/hahayo/12131800)-내 말을 못 알아듣다니 멍청하구나! 너는 공부를 좀 해야 한다!- 화가 나 있는 거 같습니다.
참, 저는 서구문명이 어리석음을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millie.co.kr/h4/checkit-test/

명절 교통편을 기다리는 시간에 딸아이가 해보래서 했다.

결과가 썩 듣기 좋지 않았다.

책 좀 읽는다고, 남의 오타 고쳐주는 걸 꽤나 즐기는 주제에, 아 이 정도밖에 안 되네, 하는 마음에 좋지 않은데, 옆에서 딸 아이가 낄낄대는 것도 안 좋은 마음을 부채질했다. 

그러다가, 늘 내가 잘하는 자기 변명의 순간이 도래했다. 

우선, 딸아이랑 이건, 책장사치들의 농간이다,로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까, 대부분 나쁜 평가결과가 납득이 되었다. 짧게 변명한 다음에는 다시 길고 긴 합리화의 말들을 찾았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책들은 항상 쉽게 쓰라고 했었다. 어렵게 써 놓고는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다니, 이거 참 교활한데 싶어졌다. 못 알아들으면 설명해주려고 해야지, 더 쉽게 설명해야지, 이 사람들 이제 '문해력이 떨어졌으니 문해력을 키우라'고 하네. 싶어서 참. 

언어가 가지는 한계가 분명한데,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상대방 탓을 하는 게 좋은 건가, 싶다. 세상 참 신기하게 변하네, 하는 마음까지 든다. 

문해력 테스트, 어려웠다. 나쁜 결과를 받아들고 시험 탓을 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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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2-02-11 0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수에게 이해가 잘 되고 의미가 잘 전달되는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하는 1인입니다. 쉬운 글이 수준 낮음을 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솔직히 저는 다른 이웃분들의 글도 많이 어려워요😅 읽다보면 좀 더 이렇게 저렇게 바꿔서 쉽게 쓰셔도 될텐데 싶을 때가 많더라고요...ㅎㅎ

별족 2022-02-11 09:26   좋아요 2 | URL
어렵게 써놓았거나 이상하게 들려서 물어보면 공부하고 오라고들 해서 -_-;;;;
 

예전에 독도이슈가 화르륵 타올랐을 때 동생이 '누나, 이러는 게 일본이 바라는 거야'라고 했었다. 분쟁이 생기고, 국제재판소에 올라가는 것, 그게 일본이 바라는 거라고. 당연하게 점유하고 당연하게 우리 땅인데, 왜 재판에 올리겠냐고. 심판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는데, 라고 말했다. 아, 기분 상 더 이야기하고 싶어도 참는 게 좋을 수도 있겠네, 생각했다. 나한테 그렇게 말한 동생은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했다. 동북공정으로 화르륵 분노의 여론이 끓어오를 때, 근대국가의 국경은, 역사상 국경과 분명히 다르고, 그럼 중국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거냐며, 지금 중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는 일부분 중국의 역사로도 기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생의 말들을 들어서 나는 좀 더 가만히 있기로 했다.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개막식에서 중국 내 수많은 민족들이 자신의 전통의상을 입고 거대한 중국의 오성홍기를 떠받쳐서 옮겨서 게양했다. 그게 '한복공정'이란 이름으로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게 왜?라고 생각한다. 이웃으로 살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 영향이라는 것은 사람들이기도 해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전쟁으로 포로가 되어 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기도 했다. 바랐건 바라지 않았건 살게 된 후로 국경이 고정되고 국경 내 사람들은 이제 근대국가의 사람들이 되었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본에도 미국에도, 중국에도 우크라이나에도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과 국경이 같지도 않고, 그대로 정체성을 이어오지도 않는다. 역사가 길고, 긴 역사 가운데 가지는 어떤 정체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정체성 혹은 그 감각 그대로 모두 다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국경선이 가로지르는 데로, 북한에 갈 수도 없고, 그 모든 역사적 일들을 바로잡아 되돌릴 수도 없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 기억들 가운데에서 살아갈 뿐이다. 

중국의 조선족이 한복을 입는 일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다른 많은 분노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복은 대한민국의 옷이라기 보다, 조선의 옷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의 정체성을 나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조선인이었던 사람이 중국에도 살고 있다. 그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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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룻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페이퍼로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이문영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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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을 딸'을 다시 읽으면서 그 속에 역사가의 정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역사가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했는가 하는 점을 씁니다. 하지만 조사원은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을 쫓지요."-p132


역사에 대해 말하는 것에도 의아한 마음이 되었다. 


"역사학자는 펜을 들기 전에 심리학을 좀 배워야겠는걸."

"그렇게 하도록 해도 그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에게 흥미를 갖는 이는 역사 따위를 쓰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거나, 정신과 의사가 되거나, 치안판사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되거나 또는 점쟁이가 되겠지요. 인간에 대해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역사를 쓰려는 동경심 따위는 갖지 않습니다. 역사는 장난감 병정과 같으니까요."-p244


소설 책 속의 역사가는 아마도 위서를 만들어 거짓을 진실인 척 꾸며내는 사람들인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하는 사람들인 걸까? 내가 생각하는 역사가,는 진리는 시간의 딸, 속의 역사가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가는 사실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그것들로 씨실과 날실을 짜서 과거의 이야기들 가운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역사는 장난감 병정이 아니고,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거울과도 같다. 

초록불님 블로그(http://orumi.egloos.com/)로 알고있는 이문영님의 '하룻밤에 읽는 한국고대사'를 읽었다. 역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소설가가 쓰는 고대사는 비어버린 기록의 틈들 가운데, 그래도 살아남은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크게 남아 있지 않은 고구려사가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만화 바람의 나라,-기억하는 장면은 해명과 어린 무휼이 이야기나누는 장면이다- 때문이구나. 역사란 이야기가, 현실에 경각심을 줄 수 있도록 역사를 가리지도 비틀지도 않아야 한다. 가리지도 비틀지도 않아도 해석이 달라진다는 게 역사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이야기들 가운데, 무언가 인간에 대한 어떤 생각은 권력에 대한 어떤 생각은 위태로움과 번영에 대한 경각심은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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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2-10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제 페이퍼 오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댓글 읽고 수정할 수 있었어요.
별족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별족 2022-02-11 05:5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전자책] 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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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247759) 처음 읽을 때처럼 긴박하게 읽지는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래도 다시 읽으면서는 영국과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같은 생각을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서 정말로 그러한가, -역사가라고 해도 증거없이 쓸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같은- 질문하면서 읽었다. 


계유정난,처럼 비유되었지만, 실상은 광해군인 건가 싶었다. 읽으면서 많이 찾아봤는데, 광해군이 꽤나 오래 왕이었어서 놀랐다.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찾아 읽어볼까 싶다. 


다시 읽으면서는, 뒤에 붙은 짧은 단편이 새삼스러웠다. 범죄라는 게 얼마나 정의하기 어려운가, 처벌하기 어려운가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이면서도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는 사람은 백치라고 보아 틀림없습니다."
"플리먼은 백치가 아닐세. 그것은 내가 보증하네." 경감이 끼어들었다. "매우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나이일세. 그것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네."
"내가 말씀드린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백치란 무책임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백치는 무책임의 대표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열 두 사람은 모두 30대의 남자들이었는데 꼭 한 사람만 아주 무책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곧 ‘저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 P38

"결국 악인이라는 것도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럼,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오겠습니다. 이제 통증은 없지요?" - P45

만일 형사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해들은 이야기다. 특히 전해들은 증거는 더욱 질색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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