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 안나
젬마 말리 지음, 유향란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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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기시감이 든다. 청소년들이 떼로 갇힌, 거기는 기숙학교일 수도 있고, 소년원일 수도 있고, 정신병동일 수도 있다.  

내가 머릿속에서 그린 풍경은 영화 속의 고아원 풍경이었다. 뮤지컬인데, 똑같은 옷을 입은 소년들이, 멀건 죽을 받아 자리잡고 먹는 풍경.  

이 소설의 설정은 책소개에 이미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건 미래소설이면서, 청소년대상 소설이다.  

먼 미래, 자연적인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 인간이, 한정된 자원때문에, 출산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인간과 '잉여'인간이 존재한다. 더이상 인간은 출산을 하지 못하고, -이건 제약회사의 로비때문인데, 세계적으로 포고령 뭐 이런 것이 발효되어 기본값은 자신의 영생, 출산과 자신의 죽음은 선택지다-  합법적인 인간조차 엄격하게 제한된 자원만을 사용하고, 잉여인간에게는 더 엄격하게 자원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낭비도 절약도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 미래에서 낭비에 대한 묘사는 아련하다. 그래서, 이상하다. 나는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하겠다. 이 미묘한 은유가, 이 상황에 대한 묘사에 나는 너무나도 뜨끔뜨끔했다. 잉여인간에게 요구되는 절제의 미덕은, 지금 내가 나의 남편에게 해대는 말처럼 들린다. 낭비에 대한 찬양처럼 들린다. 나는 영생보다 새로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선택하겠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는 것처럼 자원을 낭비하는 처사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이를 낳지 않고, 자신이 죽지 않기로 선택하는 사람만큼, 아이를 낳기로 하고 자신이 죽기로 한 사람도 그렇게 소비적으로 보인다.  

나는 남편에게 지구를 생각해서 아끼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가장 큰 낭비는 역시 아이들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더 많고, 덜 쓰는 세상을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언젠가 닥칠 현재의 내가,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면, 과연 자원을 아낄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친구가 임신소식을 전하며, '새로운 걸 뭐든 좋아하는 우리는 좋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나는 너무 좋아서, 계속 생각했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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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장이의 딸 - 상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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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도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아서, 일없이 바느질로 저녁을 보내면서 딸이 거부하는 앞치마를 만들고 말았다. -왜 내 딸은 나에게 어떤 옷은 입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리는가-  

좋다는 서평들이 많아서, 나는 나의 이런 느린 독서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차이인가' 고민하였다. 혹은 나에게 난독의 시기가 도래한 것인가 고민하였다.  

나처럼 줄거리에 매진하는 독자에게-그래서 울프를 읽지 못하는- 상권의 마지막에 가서야 두번째 정체성이 드러나는 이 이야기는 하염없이 느렸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읽는 것은 심난하고, 게다가 그 누군가가 공동체에서 배척당하는 이방인이라서 또 더 심난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놀라운 반전이라고 하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저렇듯 거창하게 묘사한 건가. 상권의 중반까지 느리게 가던 이야기를 겨우 겨우 넘기고 어떤 이유였던지-내가 난독의 시기를 넘긴 것이거나, 이야기가 탄력이 붙어 다음이 궁금했던가- 마지막을 넘기면서 그리고 말미의 에필로그까지 읽으면서, 나는 겨우 나의 거부감의 실체를 이해했다. 아무리 놀라운 반전이라도, 아무리 놀라운 사건이라도, 이렇게 질질 끌다가 드러나서는, 혹은 그 드러남이 이렇게 완만해서는, 혹은 역시 그렇게 놀랍지 않을 때에는 뭐 그런 거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고 싶지만, 그건 소설로서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소설적인 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뭘 또 과장했길래,라고 하면,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하염없이 길어지는 순간을 참지 못한다. 나는 내가 쓰는 글에서도, 내 맘 속을 모두 묘사하려고 욕심내지 않는다. 짧게 말할 수 있다면 더 짧게,라는 것이 나의 바램. 이야기만으로도 꽉 차는 이야기들을 나는 바란다. 살다가 죽을 뻔한 순간이 있었겠지. 그렇다고 지난 후 그게 그렇게 놀랍거나, 기쁠 것인가. 아, 나는 그저 살아 있는 것 뿐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새삼스럽게, 더 아프다고 하는 거냐, 하는 그런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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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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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고 가난뱅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알라딘 책소개에 통째로 들어있는 그 서문 그대로 나는 가난뱅이다.  월급을 받는 가난뱅이, 미래가 두려워 돈을 쌓아두는 가난뱅이다. 그런데도, 사방에서, 네가 정말 가난뱅이냐고 말해서, 아닌 척 하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가난뱅이다. 그러다가도 사방에서, 너는 정말 가난뱅이라고도 말해서, 두려움에 떨며 회사에서 하는 말에 초등학생처럼 복종하는 가난뱅이다.  

아, 나는 가난뱅이인데, 내가 가난뱅이인지, 부자인지도 모르고, 이 삶이 내가 노력하면 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미래를 보고 오늘을 저당잡히는 삶을 산다.  그래, 나는 가난뱅이고, 열심히 회사에 다니거나, 빈둥빈둥거리거나, 앞으로도 가난뱅이다. 어차피 가난뱅이, 살고 싶은 데로 살아야 하는 거였다. 아, 나는 겪어본 적 없는 가난이 두려워 이렇게 바보같이 살고 있는 거다. 아, 나는 정작 하고 싶은 걸 몰라서 그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난뱅이는 돈을 쌓아두지 않는 사람. 이건 불필요한 소비에 휘둘려서가 아니라, 있을 때 나누는 마음의 풍요로 비롯되는 것. 이러나 저러나 가난뱅이, 차라리 가난뱅이끼리 서로 도왔다면, 삶의 커다란 고리가 나를 돕겠지. 라는 부자들은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  

세살짜리 아이를 키우면서, 이걸 마음에 품어도 되나 걱정하지만, 돈이 없어도 아이는 자란다는 걸, 그것도 꽤 훌륭하게, 라는 교훈을 글쓴이의 부모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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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5-2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는 친구들에게 가난을 숨기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게 올바르지 못하다는 걸 할머니께 듣고 깨달았지요.
가난한 사람은 평생을 가난으로 살아도 행복한 사람은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별족 2009-05-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확하게 말하면 가난의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인 거 같아요. 극심한 비교대상이 없어서, 그런 거지요. 친구대신 형제들과 놀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네루다 2009-05-23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토록 깔끔하고 짧으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서평이라니! 혹해 들어와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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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걸 이글루의 초록불 블로그(orumi.egloos.com)를 보고 (http://bluepyramid.org/)가서 하게 되었었다. 책테스트 결과를 받아든 건 3월 말, 책을 산 건 4월 15일, 그런데도 사놓고 묵히다가,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나는 내 책 테스트 결과로 나온 이 책의 표지가 마음에 안 들었다. 저렇게 어두운 할아버지의 얼굴이라니, 하고는 테스트 결과 전에도 책소개를 본 적 있으면서, 머뭇머뭇 넣어볼까도 했으면서, 그런데도 미적미적 방치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게 나의 무언가 정체성과 걸려있다는 생각을 해서 겁이 났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내내 내가 이런가, 생각했다.  

책 속의 세계가 완벽한 통제된 평화로 보이는 순간에 모르는 게 약인 세상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혹시 내가 이런 세상을 꿈꾼다는 인상을 주나?'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여성평등이랄지, 가족관계의 불평등성이랄지에 대해 생각하고, 나름 미래는 어때야 할까 많이 궁리했었기 때문에, 가족관계에 대한 묘사나 공동체를 위한 엄격한 규칙들, 모든 자원을 배분하고, 선택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다. 그 안에 속한 주인공 소년의 묘사를 따라가는 독자로써의 나는 내내 그 사회에 대한 큰 의문없이, 이것이 미래소설이라기보다는 조금 원시적인 공동체의 묘사라고 생각했다. 작은 공동체, 마을 원로들이 섬세하게 많은 것을 결정하는 이 구조를 미래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소년이 기억보유자로 선택되어 기억전달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 사회를 이 공간을 상상할 수 없었다. 혹은 나의 상상은 실재와 너무나 달랐다. 텍스트로 비어있는 공간이 기억전달자를 통해 드러나면서, 나의 상상이 오류 투성이여서 놀랐다.  

책 테스트 결과는 '내가 보호받으면서 따뜻한 유년기를 보냈고, 지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두 시기를 조화시키는 게 중요하다'정도로 말했다. 그런데, 그런 의미로 이 책을 추천받았다니, 나는 계속 생각만 많아지는 거다.  

내가 소년의 전반기 묘사에 지나치게 안도했음을 깨닫고, 내가 혹시 그런 세상을 바라는가 의심하게 되고, 그래서, 혹시 선택을 기피하는 나의 게으름에 일침을 놓으려는 선정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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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의 대화 - 자폐를 극복한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템플 그랜딘.캐서린 존슨 지음, 권도승 옮김 / 샘터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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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데, 속도가 안 났다.  

궁금하고 신기한 이야기가 책 한 권에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짬짬이 쉬면서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자기자신이 자폐라서, 동물을 더 잘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면서, 뇌과학, 심리학, 그리고 자신의 사고방식, 여러가지를 들어 동물의 보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그건, 진화의 단계마다 덧붙여 발달하는 뇌의 이야기나, 보여주기로 가르치는 앵무새 이야기나, 인간의 의지에 따라 진화의 방향이 달라진 쥐 이야기, 쌍으로 움직이는 특성 때문에 인간의 의도와 다르게 발현되는 특성들-고기를 얻기 위해 개량한 닭들에게 나타나는 난폭함-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주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개가 없었다면, 인간의 진화는 없었을 거라는 말도, 인간과 가축 사이의 분담된 역할의 진화에 대한 말도 하나하나 곱씹게 된다.  

게다가, 동물의 사고방식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동물과 인간 사이를 수직적으로 열세우지 않는다. 뇌에서 통합하고 선별해서 제거하는 그래 결국 차이를 놓치고 마는 일반인과 모든 차이를 그대로 인지하는 동물, 그리고 자폐인을 두고 누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을 통해서, 그리고 책을 통해서.   

내가 좀 더 주의깊었다면, '어둠의 속도' 다음에 이 책을 찾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게으르고 무심한 나머지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지금에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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