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 구스타브 도레의 그림과 함께 읽는, 명화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 0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김근주 옮김 / 예원미디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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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가의 이름이 나란히 찍힌, 이 책은 그 당시 가장 큰 오락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와 영화와 사진 팍팍 박힌 잡지책들을 집어드는 나에게는 살짝 시큰둥한 오락이다. 커다란 판형에 한면에는 그림이 다른 면에는 글이 박힌 이 책은, 만화로만 기억하는 혹은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이미지로만 기억하는-나는 아마 돈키호테를 읽은 적이 없을 것이다!- 엽기 노친네 돈키호테의 이야기다. 자신의 환상 속에서 그 자신에게는 모험이고,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치 조롱일 이야기는 호탕한 웃음 대신 등 뒤에서 낄낄거리기에 알맞다.

그림은 그 당시 상황에서 최선이었을 흑백의 그림이다. 어렸을 적 겉장이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했던 앨리스에서 보았을 법한 익숙한 듯한 그림. 어둡다 싶을만큼 꽉 찬 펜선들이 만화로 기억하는 돈키호테의 말랑말랑하고 반들반들한 이미지들을 다른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래, 미친 영감탱이지. 유럽의 숲들은 이렇게 어둡고 빽빽하겠지. 미쳤다는 것은 실제로는 이런 것이지, 사람들이 조롱한다는 건 또 이런 것이지.

이 책을 통해 내 기억 속의 돈 키호테가 많이 늙었다. 글 뿐이라면, 내 멋대로 상상해버렸을 텐데, 그림은 그런 여지를 없앤다. 동적이지는 않지만, 그 당시 유럽사람들이 상상했을 법한 모습으로 돈키호테와 그 모험을 내게 보여주었다. 무모한 도전의 이미지여서 나름 씩씩하고 용감하게 내 안에서 윤색되었던 이미지는 책과 그림을 거쳐 '무모할 수밖에 없는' 그의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슬프고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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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야만 - 20세기의 역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김현구 옮김 / 돌베개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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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파 입원한 중에, 동료가 골라다 준 책이다. 티비가 보이지 않는 다인실에서 앉지도 못한 채로 읽었다. 그러다가, '너 그런 무거운 책을 그런 자세로 읽고 있다니 허리가 낫겠어?'라는 핀잔도 들었다.

그렇다! 이책은 두껍고 무겁다.

그러나, 두께의 압박에 비하여 쉽게 읽힌다. 전체가 결국은 인류의 20세기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각각의 주제별-그건 식민지, 제노사이드, 환경 등등-로 20세기의 사건들을 서술하는데, 특정한 국가나 민족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는 현상을 언제나 자연 안에서 찾을 수 있다'라는 말을 알고 있다. 정반대의 가설을 가진 학자라도 자신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데, 그건 여성학을 학습하던 어느 순간에 무척 인상적으로 내게 다가온 말이었다. 이 말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어떤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건, 지나간 20세기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확신을 강화시킬 수 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데 읽는 내내 무서웠고, 그래도 미래는 낙관적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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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여행기 - Izaka의 쿠바 자전거 일주
이창수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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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를 여행한 여행기에 '물가가 정말 싸다'라는 말을 읽게 되면 화딱지가 난다. 이 책에도 그런 말이 있다.

동경하는-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읽고 하는- 나라에 남의 돈으로 갔다 온 것도 배가 아픈데, 자동차와 비행기만으로 슥 훑은 것도 아니고 자전거로 갔다는 것도 부러워 죽을 지경인데, 그런 주제에 '물가가 싸다'는 식의 너무 당연한 아니 당연하다기 보다 그저 상대적인 '사실'을 전하는 데 한 마디라도 낭비한 게 화가 난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있을 것들이 두려워, 실제로는 아무데도 못 가는 나같은 위인이- 여행에서 좋은 것은 자연 뿐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 잠깐의 만남에도 큰 교감을 나눈 듯 이야기하는 것을 듣자면 것도 심술이 난다.  

살지 않는 사람의 감상이란 어떤 식으로든 윤색되는 법이라서, '아이스크림 먹는 할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좀 오버다 싶다.

나의 이런 화딱지, 심술 들은 책장을 모두 다 넘긴 뒤에 닥쳤다. '물가가 정말 싸다'고 열번쯤 말할 때는 정말 싸구나,라고 읽다가 책장을 다 덮고는 '그 나라 사람들 월급이 이만원인데, 그게 뭐가 싸. 자기는 외국인이니까 그런 거잖아!'라고. 그 사람들 월급과 비교해서 트집을 잡을 만큼 이야기가 거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다른 이야기들로 -그러니까 이작가라는 사람의 삶, 책, 영화취향, 성격 등등- 연결되어 풀려나가는 여정은 재미있다.

쿠바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서 읽은 것도 아니고, '정말 재미있다'는 말에 혹해 읽은 것이므로 유감은 없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고, 일기란 더더욱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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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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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게 되는 아이의 태교삼아 이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아침, 통유리 거실 문 앞에 앉아서 소리내어 조금씩 읽었다. 소리내어 읽을 때 책은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오는구나, 하고 느꼈다. 구어체의 문장들이라서, 소리내어 읽기에 더욱 좋았다. 두 분이 대화하는 걸 나 혼자 읽는 것이지만,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노자의 이야기는 토막토막 익숙하지만, 울림이 깊다.

태교를 잘 했나봐, 아기가 참 착하네, 라는 말을 들으면, 그건 아마 이 책 때문인 거라고 으쓱, 한다.

노자가 전 인생을 털어 들려주는 이야기에, 두 분의 어른들이 더하여 붙인 이야기가 참 좋다. 두 어른의 배경이 기독교 천주교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런 종교적인 부분에 집중하시거나 하지는 않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사상가, 철학가로서의 노자를 우리 시대의 고민에 비추어 만나게 된다. 조금은 시대가 어긋나더라도, 그런 가르침은 다시 그 시대에 또 새로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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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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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오해하고 있었다. 책에 대한 평들이 그렇게 많고, 분명히 무언가,를 읽고 샀을 텐데, 이 책을 정작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이 책이 '창녀'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뭐, 그런 비유가 있다고 우기기로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나, 책을 쓰는 사람에 대한, 혹은 책 속의 소설가가 창녀의 집에 묵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 역시, 터무니없다.

이 책을 동생에게 추천하면서, 아니 정확히는 '잉그리드 베탄쿠르'를 추천하고 동생의 시큰둥한 반응을 접하고, 내게 '재미있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가 어떤 책을 '재미있다'고 하려면, 다음이 궁금해야 한다. 책을 시작해서, 진행하는 중에 그 다음이 아주아주 궁금해야 한다. 그래야 내게 '재미있는' 책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재미있다!'

책을 사고 읽기까지 오래 걸렸다. 좋다는 말들에 혹해 샀으나, 표지의 분위기는 슬쩍 내 취향이 아니었고, '창녀 이야기'라는 오해까지 했으니 아 좀 더 나중에,라고 미뤘다. 출산휴가로 아기와 있으면서, 아기가 깨어있는 낮에는 아기에게 읽어주고, 아기가 잘 때는 눈으로 읽어 오래된 여러 권짜리 소설들을 읽어치우는 와중에 포함된 것이다. 그래, 장바구니에 넣었을 적의 인상이나 사전지식은 모두 산화되어 버리고,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읽게 된 것이다. 뭐, 그래 더 좋았다.

책에 대한 책이란 점에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연상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로는 꽤 잘 빠지는 그럴싸한 '연속극'을 만들 수 있다. 몇가지 상투적인 대목과 서둘러 덮어버린 마지막까지 정말이지 딱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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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1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셨음 그만이죠^^

별족 2007-01-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왜 이런 오해를 한 것일까, 표지디자인이 유사한 책이 있는 건 아닐까, 뭐 등등 여러가지 고심했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