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출판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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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아, 그러니까 누나를 이해하자. 아침, 아들은 와하하 웃고, 큰 딸은 조금은 억울해한다. 딸은 '이상한'을 듣고 억울해하고, 나는 '이해하자'를 듣고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나는'겁내지 않고 그림그리는 법'을 읽고 있었는데, 책 속에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이상하다,는 말이 있었다.

이 책은 딸이 중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었다. 종이책을 읽다가 반납해야 한대서, 이북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 산책할 때, 출근길에 나눠서 이북으로 읽었다. 이북으로 이책을 읽는 중에, 종이책으로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읽었고, '한자의 역설'을 읽었다. 동, 서양의 사고체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고 다른 두 권의 책이 동양인 저자의 책이라서, 심지어 '한자의 역설'은 한자 자체가 얼마나 중의적이고, 그 연결 안에서 확장되는 세계관에 대한 책이라서, 이 책의 어떤 태도가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임상보고서같은 내용들인데, 오, 신기하네, 하고 읽어가다가 음,왜 이렇게까지라는 느낌을 받은 것은 '언어인식불능증'을 진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목이었다.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을 진단하기 위해 기계어로 녹음된 문장을 들려준다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지장애'를 파악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대화하는 것에는 언어 이외의 많은 요소들, 눈빛과 표정과 제스처가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의사의 수고가 의미가 있나, 우선 의심하고, 그걸 병이라고 하는 것에 물러난다.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서양인 의사는 뇌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알아내려고 하는구나,라면서 읽는다. 읽으면서는 무언가 '정상'의 범주가 굉장히 좁구나, 느낀다. 마지막 장에서 일반화가 안 되는 구체화만 일어나는 존재에 대한 묘사는 나에 대한 묘사같다고도 느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듣는 걸 똑같이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린 적이 있다. 상대의 머릿속은 내가 영원히 알 수 없구나, 깨닫는 순간, 알 수 없는 인간이 깊은 물처럼 느껴졌었다. 나는 이 알 수 없는 느낌을 탐구해서 알아야지, 하는 사람이 아니고, 아 참으로 놀랍다며 물러서는 사람이라서, 결국 자신이 기준일 수 밖에 없는 학자가 상대를 '이상하다'고 판별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물러서는 거다. 기준은 나일 수 밖에 없는데,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건 무얼까, 계속 의심하는 거다. 있겠지, 정상의 범주가 그 정상의 범주를 정의해뒀겠지. 그렇지만, 그 범주를 벗어난다고 뭐가 또 문제일까, 생각하는 거다. 추상화가 안 되는 사람, 인간들 속에서 어지럽다가, 자연 속에서 편안한 사람, 고친다면 무얼 고쳐야 하는지 생각하는 거다. 스스로의 이상함이 걱정스러운 사람에게 '당신의 뇌 중 여기가 비대해져서 이상하네요'라는 말은 좋을까, 싫을까.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딨어? 다 조금씩 이상해,라는 말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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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1-04-06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뇌와 관련된 책이었던거 같은데 절판되었던데 다시 출간된줄은 몰랐네요^^
 
한자의 역설 - 한자는 중국을 이렇게 지배했다
김근 지음 / 삼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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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의 관심이 흐르는 데로 내 자신이 언어의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했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247760

그러다가, 페미니스트가 문제삼는 그 많은 것들이 서양문명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

다른 언어, 가운데 다른 생각들이 다른 방식으로 정렬되고 있는 게 아닌가.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은 다르고, 서양문명에서 문제삼는 그 많은 것들이 동양문명에 과연 있는가 의심했다. 

걸어다니는 어원사전을 읽고(https://blog.aladin.co.kr/hahayo/12321381) 표의문자의 세계에 대해 읽어보자고 책을 골랐다. 우리말 어원사전(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4877307)을 먼저 골랐는데, 이건 말들의 어원과 들어온 시기같은 것들이다.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면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과연 그 단어가 있었을지 참조할 목적으로 보는 책 같았다. 그래도 우리 말 많은 단어의 가장 큰 지분은 한자어이고, 그래서 다시 이 책을 골랐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분이 거의 중요한 부분들을 인용해놓았다. 표의문자인 한자가 이미 그 안에 중의적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극단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는 동양적 세계관에 대해서도 말한다. 문자가 이미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다.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태도, 결국 원처럼 연결되는 끝과 끝에 대한 태도를 읽는다. 거대한 중국, 거대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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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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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숨,이 좋았다고 했다. 

나는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을 고를 것이다.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상태였고, 말에 글이 더해지는 상황 다음에 글에 이미지가 영상이 더해지는 미래가 병치되는 것이 신기했다. SNS로 기록하는 일상 다음은 책 속의 묘사처럼 모든 영상을 촬영하고 업로드하는 근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쟁의 상황이라면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하듯이 개개인의 영상을 돌려볼 수 있는 미래에 자신의 조작된 기억을 마주하는 것과 처음 문자가 들어 온 아프리카의 상황은 놀랍게 연결되었다. 그러다가, 테드 창의 어떤 면모는 제1세계 지금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상황 가운데의 미래일 수 있다는 회의도 조금은 들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처럼도 보이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았다. 아이 대신 반려견을 기르는 세태 다음에,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미래를 상상한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서비스가 끝나가는 가상의 공간, 가상의 존재들이 자라고 저항하는 상황까지도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지 못하고도 좋아하는 이야기는 처음 실린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이야기 속의 성적 판타지가 부끄러워서 뭔가 물러서게 된다. 우화같기도 한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있고, 이야기를 감싸는 큰 이야기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다. 그 안에 작은 이야기는 시간을 거스르는 연금술사의 문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돈에 대한 이야기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결국 우리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 가운데, 내가 물러서는 이야기는 이런 거다. 젊은 날의 자신을 만나 부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남자를 보고, 그 아내가 그 문을 지나 자신을 알기 전 젊은 남편을 만나고 정부가 된다. 남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남편은 아닌 그 젊은 남자와의 서툰 사랑 가운데 여자는 자신을 처음 안았던 남편의 능숙함을 가르친다. 젊은 남자는 나이 든 여자와의 사랑 가운데 능숙해지고, 다시 만나게 되는, 같지만 다른 여자에게 사랑의 기쁨을 선사한다. 여자들끼리 이야기할 때, 하는 이야기들, 자신의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면 좋겠는지 말하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나는 상대가 좀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아서 나를 좀 리드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던 때 말이다. 바람둥이는 싫은데, 능숙했으면 좋겠어,는 도대체 뭐람. 불가능한 바램들 가운데 이야기는 나이든 아내가 시간의 문을 지나 젊은 날의 남편을 가르치고, 잘 배운 남편이 젊은 아내에게 기쁨을 주는 방식으로 도덕적 문제를 회피한다. 그런데, 과연 도덕적 문제가 없는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시간이 어긋나 자책하는 마음은 없을 지 몰라도, 이야기의 명랑함 뒤에 나이 든 아내는 나이 든 남편을 배신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남자들에게도 이런 종류의 환상이나 바램이 존재하는가 싶어 신기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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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샤인 - 제시카 소설 데뷔작
제시카 정 지음, 박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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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빌려 읽으니 이런 책들도 빌려 읽는다. 그러고는 가차없이 이런 식으로. 


내내 한 생각은 왜 레이첼의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하는 걸까. 지원하기로 하고 이주까지 했으면서 왜 그렇게 통제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레이첼에 이입할 사람이 아니니까. 중학생인 딸이 케이팝스타를 꿈꾸면서 기획사에 들어간다면, 나는 혼자 보낼 거 같다.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가 그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레이첼의 어머니는 언제나 모호한 태도로 언제나 모호하게 행동한다. 모두를 가질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걸 용납하지도 않는다. 


너무 한심한 이야기들이라 겨우 겨우 읽었다. 아이가 부모를 이해하려고 지어내는 이야기들은 다 좀 한심하고, 레이첼이라는 주인공 여자애가 매력이 없었다. 로맨스로 읽기에도 부족하고, 아마도 서양에서 먹힌다면 가혹한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세계가 궁금해서인가 싶다. 

시류에 영합하려는 듯한 시도로 '여자에게 가혹한' 따위의 묘사들은 뭐지? 싶다. 

아름다운 얼굴과 멋진 청춘의 몸매,를 전시하며 가짜 사랑을 판다. 연예계,라는 게 그렇지 않나? 

그 판타지 안에서 열매를 취하면서, 비판은 거부한다는 건 모순이지 않나. 

여자들이 여자들끼리 따돌리는 상황에 대한 묘사도 그런 생각이 든다. 

문화,는 여자들의 영역이고, 여자들의 오랜 문화 안에서 여자들이 만드는 억압들이다. 문화,라는 추상은 결국 사람들이 만드는 거고, 레이첼이 추미나를 비방하는 그 모든 말들은 업계 밖의 사람들이 하는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업계의 판타지 속에서 이력을 쌓아, 부를 일구고도 여전히 업계의 판타지를 이런 한심한 소설로 써서 파는 작가가 뭐지 싶다. 

가짜 사랑을 팔고 있으면서, 그것에 따르는 댓가는 하나도 치르지 않는 것, 그건 과연 합리적이기는 한가. 도대체 데뷔를 앞둔 연습생 주제에 톱스타 남자와 연애도 하면서, 나에게는 케이팝밖에 없다는 모순투성이 태도인 주인공에게 이입이나 할 수 있냐고. 사랑과 직업적 성취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시기, 혹은 상황에서 두 개 다 가능한 양 말하는 어린애의 쓸데없이 긴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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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안온한 날들 - 당신에게 건네는 60편의 사랑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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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이 구멍났다고 쩔쩔 매는 친구에게 잊어,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아무도 널 안 봐. 아무도 날 안 봐도 나는 아니까 신경이 쓰인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 게 자의식이지. 


첫번째 에피의 할아버지 이야기에 눈물이 찔끔 나다가, 전화로 통화한 어머니와의 대화 묘사에 갸웃한다. 사람들이 말을 이렇게 문어체로 하나 싶어서. 


그래도 꾸여꾸역 연애한 이야기를 읽는데, 와 나쁜 놈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일방적인 결별을 당한 것처럼 묘사하는데, 여자인 내가 읽기에는 이상한 남자다. '이제 더는 사랑하지 않네'라고 말하면서도 여자가 떠나지 않기를 기대하다니 이상한 거 아닌가. 자신만만한 미혼의 여자라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자와 왜 계속 만나겠는가. 헤어지자,는 말은 아니지만, 과연 여자가 떠났다고 그게 여자의 일방적인 결별인가. 자신의 연애사가 한참이나 있어서, 소금에 대한 이야기나 다시 만나 술집을 전전하는 이야기나 다 구질구질하다. 작가,라고 자기 이름 옆에 붙이기 위해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인 서사를 쓴다. 못 봐주겠다. 

 

결국 화장실에서 쓰러진 노점상 아주머니가 응급실에 실려온 에피소드에서 두 아들들을 묘사하는 대목에 정말 너무한 걸 싶어가지고 반납했다. 소설도 아니고, 자신의 직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다니 너무 무례한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앞으로 만날 일 없는 그래서 안전하게 생각해서 하소연했을 그 아이들에게 이입한 다음, 아 이 의사 정말 너무하잖아, 싶어서 그만 읽기로 했다. 이 의사와 절대로 어떤 일로도 만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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