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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언니는 숨,이 좋았다고 했다.
나는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을 고를 것이다.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상태였고, 말에 글이 더해지는 상황 다음에 글에 이미지가 영상이 더해지는 미래가 병치되는 것이 신기했다. SNS로 기록하는 일상 다음은 책 속의 묘사처럼 모든 영상을 촬영하고 업로드하는 근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쟁의 상황이라면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하듯이 개개인의 영상을 돌려볼 수 있는 미래에 자신의 조작된 기억을 마주하는 것과 처음 문자가 들어 온 아프리카의 상황은 놀랍게 연결되었다. 그러다가, 테드 창의 어떤 면모는 제1세계 지금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상황 가운데의 미래일 수 있다는 회의도 조금은 들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처럼도 보이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았다. 아이 대신 반려견을 기르는 세태 다음에,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미래를 상상한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서비스가 끝나가는 가상의 공간, 가상의 존재들이 자라고 저항하는 상황까지도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지 못하고도 좋아하는 이야기는 처음 실린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이야기 속의 성적 판타지가 부끄러워서 뭔가 물러서게 된다. 우화같기도 한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이 있고, 이야기를 감싸는 큰 이야기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다. 그 안에 작은 이야기는 시간을 거스르는 연금술사의 문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돈에 대한 이야기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결국 우리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 가운데, 내가 물러서는 이야기는 이런 거다. 젊은 날의 자신을 만나 부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남자를 보고, 그 아내가 그 문을 지나 자신을 알기 전 젊은 남편을 만나고 정부가 된다. 남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남편은 아닌 그 젊은 남자와의 서툰 사랑 가운데 여자는 자신을 처음 안았던 남편의 능숙함을 가르친다. 젊은 남자는 나이 든 여자와의 사랑 가운데 능숙해지고, 다시 만나게 되는, 같지만 다른 여자에게 사랑의 기쁨을 선사한다. 여자들끼리 이야기할 때, 하는 이야기들, 자신의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이면 좋겠는지 말하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나는 상대가 좀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아서 나를 좀 리드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던 때 말이다. 바람둥이는 싫은데, 능숙했으면 좋겠어,는 도대체 뭐람. 불가능한 바램들 가운데 이야기는 나이든 아내가 시간의 문을 지나 젊은 날의 남편을 가르치고, 잘 배운 남편이 젊은 아내에게 기쁨을 주는 방식으로 도덕적 문제를 회피한다. 그런데, 과연 도덕적 문제가 없는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시간이 어긋나 자책하는 마음은 없을 지 몰라도, 이야기의 명랑함 뒤에 나이 든 아내는 나이 든 남편을 배신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 남자들에게도 이런 종류의 환상이나 바램이 존재하는가 싶어 신기하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