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전나무 - 안데르센 명작 동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상헌 옮김, 마르크 부타방 그림 / 큰북작은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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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다른 나무들처럼 키가 크면 얼마나 좋을까? 가지를 활짝 펴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저 꼭대기에서 한눈에 넓은 세상을 내려다볼 수도 있잖아. 비바람이 불면 저기 서 있는 큰 나무들처럼 당당하게 몸을 흔들고 말이야.


어렸을 때 나는 얼른 자라서 어른이 되었으면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른들은 못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다. 우러러보아야만 하는 그들의 세계는 자유 그 자체였다. 고 작은 몸뚱이 안에 나는 얼마나 커다란 자유에의 열망을 품었던가.


숲 속, 작은 전나무는 이름 그대로 작다. 산토끼가 훌쩍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전나무는 커다란 나무들을 부러워한다. 배의 돛이 되어 바다를 떠다니고, 화려한 몸치장을 하고 저녁의 거실을 빛내는 그들의 삶을 동경한다. ‘그곳’을 그리워하는 작은 전나무는 ‘이곳’에 있는 토끼, 새들, 햇빛과 공기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이곳’을 떠나고 싶다. ‘이곳’만 떠나면 무언가 의미 있고 행복한 일들이 생길 것만 같다.

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열망하듯 어른은 나 아닌 타인의 세계를 동경한다. 여기가 아닌 저기를, 이것이 아닌 저것을, 이 사람이 아닌 저 사람을. 반드시 현재의 삶이 누추하거나 고달프지 않아도 그렇다. 우리의 눈이 바깥을 향해서만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모두 작은 전나무이다.

 


 

작은 전나무는 마침내 뿌리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화려한 밤, 다정한 사람들.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에 작은 전나무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또 다른 꿈을 꾼다. 그러나 꿈을 깨어지고, 짧은 밤을 끝으로 작은 전나무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처박히고 만다. 그제서야 전나무는 숲 속의 행복을 깨우친다. 그리워한다. 토끼와 새들, 햇빛과 공기를.


 

아, 숲 속은 얼마나 즐거웠던가! 눈이 내리면 산토끼가 깡충깡충 뛰면서 내 앞을 지나가곤 했지. 맞아, 그 녀석이 내 가지에 뛰어오르던 때는 정말 좋았어. 하지만 그때 나는 좋은 줄 몰랐지.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마침내 동경하던 그 세계에 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알았다. 가고 싶더라도 갈 수 없는 곳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는 것. 하고 싶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랫동안 동경하던 그 세계는 차가운 환멸幻滅만을 안겨준 채 나를 지하실로 내몰았다. ‘여기’ 지하에서 나는 ‘저기’ 숲 속을 그리워한다.

이제 그 숲 속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는다.
어릴 때 안데르센의 동화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운 오리새끼,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백조왕자, 인어공주 등. TV 만화영화로도 자주 접해왔던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한국의 전래동화보다도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여기’ 아닌 ‘저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저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아빠가 사다주시거나 학교에서 빌린 동화책들을 나는 읽고 또 읽어댔다. 동화책을 읽어대던 그 아이는 무언가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읽는 이유 또한 그와 같다.



 

「작은 전나무」는 미운 오리새끼나 성냥팔이 소녀에 비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다. 작은 전나무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아이들이 아는 건 바깥세상을 열망하는 숲 속의 생활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을 열망하는 작은 전나무에게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타들어가는 나무의 끝을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너무 잔혹할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우리 아이에게 이해시키지? 고민하는 부모들도 많을 것 같다.

‘한 눈 뜨고 꿈꾸는 사람’이라는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뜬 눈으로는 현실을 보고, 감은 눈으로는 이상을 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우리들의 품, 숲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작은 전나무들에게 우리가 전해줄 교훈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숲 속 토끼와 새들, 햇빛과 공기를 누리면서 저 바깥세상을 향해 가지를 뻗어 올리는 일, 바로 한 눈 뜨고 꿈꾸는 것의 중요함을 깨우쳐주는 것.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해.

 

우리 어른들 또한 바깥으로만 향해 있는 눈을 안으로 뜰 때이다. 한 줌 재가 되기 전에 우리들은 이 순간, 여기, 이 사람들과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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