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의 심리학
엘리엇 애런슨.캐럴 태브리스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신정아, BBK 사건 등 거짓말의 폐해로 얼룩졌던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그리고 내 앞에는『거짓말의 진화』가 놓여있다. ‘그들’은 왜 속이고 거짓말하고 정당화하는가. 묻고 싶은가? 그들만이 아니다. 우리도 속이고 거짓말하고 정당화한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인 우리는 불완전하다. 그래서일까. 완전함을 추구하며, 변화를 두려워한다. 여기에서 부조리(absurdity)가 빚어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완전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우리를 지탱시켜주는 것은 그간의 삶을 통하여 축적되어 온 신념이다. 자아상(self-images)이 반영된 신념에 대립하는 것이 있으면 우리들은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자기 방어적 태세를 취하게 된다. 이것이 페스팅어가 말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이다. 부조화는 어떤 상황에서나 불편하지만 자기개념(self-concept)의 중요한 요소(사상, 태도, 신념, 견해)가 위협당할 때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상충하는 생각에서 조리를 찾아 최소한 마음에서만은 일관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애를 쓰게 된다. 즉 자기정당화는 자기개념(self-concept), 자기가치(self-worth)의 보존본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지부조화’는 자기정당화를 추동하는 엔진, 즉 행위와 결정을 정당화할 필요성을 만드는 에너지,라는 것이 페스팅어 이론의 핵심이며, 이 이론에서 『거짓말의 진화』는 출발한다.

자기정당화는 거짓말이나 변명과는 다르다. 우리가 누군가를 설득할 때에는 자신이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설득할 때에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기정당화가 공공연한 거짓말보다 강력하고 훨씬 더 위험하다. 자기정당화가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조화(調和)를 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옳다, 내가 틀렸다.”라는 말은 그동안 구축해 온 신념의 탑을 뒤흔들어 심각한 부조화를 낳는다. 그래서 자기정당화를 한다.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 혹은 ‘내가 틀렸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억을 왜곡하고 상대의 가치를 깎아내리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더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기억의 왜곡, 오만과 편견은 자기정당화의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이 책 2, 3장()에서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기억에서 작동하는 자기정당화의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왜곡은 자기개념을 일관되게 유지할 필요성에 의해 동기화될 때 더욱 강력하다. 기억 연구자들은 니체의 다음 말을 즐겨 인용한다. “내 기억이 ‘내가 그것을 했다.’라고 말한다.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라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굴복한다.”


4장에서 7장까지는 역사를 뒤흔든 자기정당화에서부터 일상적 자기정당화의 사례를 들어가며 자기정당화의 메커니즘 과정을 보여준다.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면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노스웨스턴 법과대학의 오심연구소(center on Wrongful Convic-tions) 소장 랍 워든(Rob Warden)은 옳은 일을 하기를 원하는 ‘선량하고’ 나무랄 데 없는 검사들 사이에서 직무상 부조화를 관찰했다. 한 번은 오심 번복이 발생했는데, 그 사건을 기소한 검사인 잭 오말리가 워든에게 몇 번이나 묻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오말리는 그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검사들은 자신과 경찰들을 좋은 사람으로, 피고들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워든은 이렇게 말했다. “그 체제에 들어가면 당신은 아주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당신은 모종의 범죄 이론을 발전시키는데, 그러면 이른바 터널시(tunnel vision)현상 - 시야가 좁아지는 시야 협착 현상. 심리학적으로는 주로 한 가지 문제나 원인에 집착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것을 말한다. - 을 겪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무죄임을 입증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나타나면 당신은 이렇게 생각을 할 것이다. ‘가만, 이 증거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잘못했을 리가 없다. 나는 좋은 사람이나까.’ 나는 이런 심리 현상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부조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 자기정당화의 성격상 스스로의 맹점을 깨우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기정당화의 함정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마지막 장에서는 바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리 특별하거나 복잡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행동을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듯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지켜볼 것. 느낌과 그에 대한 반응 사이에 작은 틈을 내어 반성의 순간을 끼워 넣는 법을 배울 것. 그리고 때로는 부조화와 더불어 살 것. 여기서 부조화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명확하게 부조화하는 인지 요소를 분리해 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뢰하던 친구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우리는 그 친구와 절교하는 대신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친구는 친구고 잘못은 잘못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믿을 만한 반대자(naysayer)를 갖는 것이다. 자기정당화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이끌어 줄 비판자. 우리 또한 누군가의 믿을 만한 반대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자신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나 자신은 언제나 공정하고, 옳은 선택을 하며, 선량하고,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간다. 『거짓말의 진화』 -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우리에게 이 책은 ‘믿을 만한 반대자’가 되어준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쁠 때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카뮈도 말했듯 인간은 자신의 삶이 부조리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생을 보내는 동물이다. 적당한 자기정당화는 자존감 유지와 후회스러운 과거 청산에 유익하다. 자기정당화가 없다면 우리는 매순간 후회하고 자책하느라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기기만이 또 다른 부조리를 낳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겠다. 다른 사람을 의심하기에 앞서 스스로에 대해 건강한 의심을 품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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