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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우울증 생활
우에노 레이 지음, 장연숙 옮김 / 열린세상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우울증. 더 이상 생소한 이름이 아니다. 현대인의 병, 마음의 감기 등 익숙한 수식어들도 많다. 그렇지만 우울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정말로 ‘마음의 감기’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마음의 감기라고 하기에는 치유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때로는 죽음을 불러오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다. 그렇다. 우울증은 질병이다. 병을 낫게 하려면 우선 그 병에 대해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울증의 발병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우울증의 치료는 그러므로 대증요법에 불과한 상황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울증 환자의 수는 급증하고 있다. 우울증과 자살률의 상관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우울증. 이제는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제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의 병 - 정신과 영역의 병에 대해서는 편견이 심하다. 집안에 그런 병을 앓는 사람이 있으면 수치로 여기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이러한 편견은 병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특히 정신적인 병의 경우에는 사회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두려움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다. 두려움과 편견은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배척한다. 이 모든 것이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희망은 있다.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제대로 알아가면 되는 것이다. 병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전문서적을 보는 법이 있을 것이고,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보다 더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환자만한 의사 없다고 하지 않는가.
『유쾌한 우울증 생활』의 저자 우에노 레이는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 커뮤니티’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우울증 체험을 바탕으로 강연을 하고 책을 쓴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우울증으로 밥벌이를 한다”. 강연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가 놀랐던 것은 우울증 환자 자신조차도 우울증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적 편견이었다. 아직도 정신과의 문턱은 드높은 것이 현실이다. 정신과에 간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우울증의 경우 이제 너무 흔한 병이 되어버렸음에도 그 편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잠재적 우울증 환자들도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모든 편견과 무지 앞에 우에노 레이는 고하는 것이다. 나는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은 질병일 뿐 인격이 아니다. 따라서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 우울증을 벗어나고 싶다면 먼저 우울증을 이해하라.
병전성격(病前性楁)이라는 것이 있다. 병에 걸리기 쉬운 성격을 말한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성실하다
▶꼼꼼하다
▶책임감이 강하다
▶완벽주의자
▶노력가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융통성이 없고 혼자서 모든 것을 떠맡으려 한다는 것이다. 천성적인 성향도 있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 못한다. 하나의 예로,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은 “힘내”라는 말 혹은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힘내서 달리고 있는 말의 등을 채찍으로 후려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에노 레이는 “힘내” 대신 “괜찮아”, “쉬엄쉬엄 해”라는 말을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일본 역시)는 쉬지 않고 달려온 덕분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리고 여전히 달리는 중이다.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르망 24시간 레이스 대회가 있다고 한다. 24시간 레이스 대회.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연료가 떨어진다. 타이어도 닳아서 해진다. 운전자도 교대해주어야 하고. 레이스 중간에 코스에서 떨어져 스텝이 대기하고 있는 정비소에 들어가 연료 보급이나 타이어 교환, 운전자 교대 등 이른바 ‘피트인’이 필요한 것이다. 피트인은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무리해서 계속 달리면 타이어가 급격히 파손되어 주행불능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에노 레이는 우울증을 바로 이 ‘피트인’에 비유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현실에서 마음이 ‘쉬라’고 지령을 내리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라고 말한다. 잘 쉬어야 잘 달릴 수 있다는 이치를 『유쾌한 우울증 생활』은 일깨워준다. 또 하나, 우울증 환자도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