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여름, 가을, 겨울 쪽으로
봄으로 또 새로운 여름을 그리며
모든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
그리고
모든 나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기 위해

- 다니카와 슈ㄴ타로, 「네로 ㅡ 사랑받았던 작은 개에게」 중에서 


     우두커니 있을 때 문득 머릿속에서 엉뚱한 질문이 굼틀거릴 때가 있다. 아주 엉뚱하고 비일상적인 질문들. 세계가 나에게, 내가 세계에게.

     어릴 때 잠자리 날개 하나를 뜯어놓고 쾌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날개 한쪽을 파닥거리는 잠자리는 날지 못했다. 이제와 궁금한 것은 잠자리도 아픔을 느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곤충은 인간에 비해 감각기 수가 매우 적어 아픔을 느낄 수 없고, 느끼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이 미미하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의 골목길, 시커먼 고양이와 마주칠 때가 있다. 고양이는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람인 나는 고양이 무서운 줄을 안다 ^^; 고양이와 마주치면 움찔, 잠시 모든 동작이 정지된다. 고양이와의 눈싸움이 시작된다. ㅡ 고양이는 만만찮은 적수다 ㅡ 그렇게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양이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고양아, 무슨 생각중?

     무엇인가 질문한다는 것. 그것은 나를 열고 나 외의 것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욕망이다. 저 너머의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려는 의지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도 있다. 질문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들에 대답해 나가는 일이 아닐까.

     다니카와 shune타로 씨는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이 책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이층 사람들의 질문과 함께 다니카와 씨의 유쾌하고 지혜로운 대답이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질문

왜 
둥그런 것이
많아요?

예) 귤, 수박, 달, 지구...... 

 Zoka, 28세 

다니카와의 대답

둥그런 것에는 중심이 있지요.
중심이 있으면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고 둥그런 것은 거칠거칠하지 않으니까
만져도 상처 입을 걱정이 없지요.
그리고 둥그런 것은 움직이는 데 힘이 안 들어요.
제가 알아서 굴러주니까요.
그리고 둥그런 것은
보고 있노라면 만사 원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둥그런 것은
더는 손을 댈 필요가 없을 만큼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느낌을 주지요.
그리고 둥그런 것이 많은 이유인데,
궁극적인 이유는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사람들에게 왜 둥그런 것이 많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고 싶어 둥그런 것이 많다고 해도 좋겠지요. 


     다소 엉뚱한 질문에도 '둥그런' 대답을 해주는 다니카와 씨,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 문장, 왜 둥그런 것이 많은가 하는 것에 대한 답, 사람들에게 왜 둥그런 것이 많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고 싶어 둥그런 것이 많다고 해도 좋겠다,는 말은 우리가 질문을 하는 의미,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세계의 의미에 대해 '둥글게' 꼬집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대답보다는 질문 그 자체라는 것,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답하고 있는가. 귀중한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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